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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Being Juli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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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장르: 코미디
등급: 15세
홈페이지: (www.sonyclassics.com/beingjulia)
20자평: 중년 여배우의 발칙하고 통쾌한 복수극.

올해로 47세인 할리우드 여배우 아네트 베닝은 2000년과 2005년, 두 번에 걸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때마다 수상의 영광은 공교롭게도 모두 16살 아래인 신예 힐러리 스왱크에게 돌아갔다. 스왱크는 남장소녀로 분한 '소년은 울지 않는다'와 여성복서의 비극적 얘기를 그린 '밀리언달러 베이비'로 거듭 상을 받으면서 이제 겨우 30대의 문턱에 연기파로 단단히 자리를 굳힌다. 세월을 속이기 어려우니 미모가 바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연기에 대한 평가에서도 번번이 후배에게 밀린다는 것은 기분이 묘할 법하다. 재미있는 것은 올 봄 베닝을 두 번째로 아카데미 주연후보에 올려놓았던 '빙 줄리아'(27일 개봉)가 바로 나이 들어가는 여배우의 얘기라는 점이다.

1930년대 런던의 극장가에서 관록파 여배우로 인정받는 줄리아(아네트 베닝)는 화려한 무대 위 모습과는 달리 중년의 권태감에 시달린다. 연극 제작자인 남편 마이클(제러미 아이언스)과는 일로나 애정으로나 딱히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는 동반자 관계다. 줄리아는 팬을 자처하며 다가온 한참 연하의 미국청년 톰(션 에번스)과 연애에 빠져 열정을 불태운다. 하지만 이 청년은 어느새 자기 또래 신인 여배우 에비스(루시 펀치)와 눈이 맞고, 에비스를 줄리아가 주연하는 신작에 조역으로 추천하기까지 한다. 보아하니 마이클과 에비스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이제 줄리아에게 남은 일은 하나뿐. 이리저리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

서머싯 몸의 원작을 각색한 '빙 줄리아'는 연극무대의 안과 밖에서 고루 희극적인 상황을 뽑아낸다. 영화와 달리 연극은 지금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상황이다. 배우가 혹 대사를 잘못해도, 소품에 걸려 넘어져도 영화촬영처럼 '한번 더'를 외칠 수 없다. 줄리아는 바로 이런 점을 십분 활용해 막판에 남편 마이클, 연인 톰, 까마득한 후배 경쟁자 에비스를 일석삼조로 골탕먹이는 복수극을 무대에 꾸며낸다. 헝가리 태생의 이스트반 자보 감독은 고향 부다페스트에서 주로 촬영한 화면으로 30년대의 고풍스런 우아함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영화에서 여배우는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하는 직종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누가 그 두려움을 위로해줄까. 줄리아는 이미 세상을 떠난 연기 스승 지미(마이클 갬본)가 환각인 양 등장해 영화제목처럼 줄리아다움(Being Julia)을 부추기는 대로, 즉 가장 자신다운 방식으로 전세를 역전시킨다. 그 방법이 현명함보다는 간교함에 가깝지만, 찬바람이 불면서 문득 나이 드는 게 서러워지는 관객이라면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런 줄리아는 자연스레 영화 밖 현실의 여배우 아네트 베닝의 모습과 겹쳐진다. '벅시'(1991년)나'러브 어페어'(1994년)처럼 웬만한 남자를 두루 가슴설레게 하는 로맨스의 주인공은 더 이상 아니어도, '빙 줄리아'에서 보여주는 풍부한 질감의 연기는 젊은 시절 미모의 힘을 훌쩍 넘어선다. 아들 또래와의 연애에 어린애처럼 마음 졸이고, 질투심에 눈을 부릅뜨는 줄리아의 모습은 나이가 든다고 생의 욕망이 그저 소멸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여전히 생생한 그 욕망 역시 매력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베닝은 이 영화로 앞서 세 차례 후보에 그쳤던 골든글러브에서 결국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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