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 광고로 보는세상] 리모컨을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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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셀은 소비자를 단순 무식한 존재로 가정한다. 따라서 하드셀 광고에서는 상표명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고, 똑같은 얘기를 지칠 때까지 되풀이한다. 하드셀 광고의 대가로는 로서 리브즈(1910~84)라는 사람이 꼽힌다. 그의 광고 철학은 아주 단순하다. "이 제품을 사라. 그러면 당신은 이런 특별한 혜택을 얻게 될 것이다."

1950년대 그가 만든 두통약 '아나신' 광고가 그렇다. 두통을 앓고 있는 사람의 머리 위에 세 개의 상자가 있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는 각각 쿵쾅거리는 망치, 꼬인 스프링, 뾰족뾰족한 번개가 그려져 있다. 멀쩡한 사람도 이런 그림을 보면 머리가 아파 올 것이다. 그러나 이런 두통은 피어오르는 아나신의 작은 기포에 의해 해결된다. 이 광고는 불쾌하고, 반복적이고, 공격적이었지만 판매를 경이적으로 증가시켰다. MGM 영화사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25년 동안 벌어들인 것보다 아나신으로 7년 동안 벌어들인 금액이 더 컸다고 한다.

유명 인사가 된 리브즈는 마침내 대통령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팔았다. 52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아이젠하워였다. 당시 미국 국민은 한국전이 장기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군인 출신인 아이젠하워로서는 그것이 이미지상 약점이었다. 아이젠하워의 광고를 맡은 리브즈는 아나신을 팔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다. 즉, '아이젠하워, 평화의 인물(Eisenhower, man of peace)'이라는 슬로건을 지겹도록 되풀이했던 것이다.

하드셀 광고의 퇴조는 소비자의 소득이나 교육 수준의 향상 등으로도 설명이 된다. 우리나라 60년대 광고와 지금의 광고를 비교해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리모컨의 등장이라고 하겠다. 만약 누군가가 리모컨이라는 것을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조지 오웰의 소설'1984년'에 나오는 세뇌된 시민들처럼 TV 앞에서 바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핑(zipping)과 재핑(zapping)의 시대에 소비자의 눈과 귀를 단 5초라도 붙들어 두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선거 유세장 같은 데를 가 보면 돈을 받고 동원된 청중들도 실제로는 보지도 듣지도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 광고에서도 정치에서도 이제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마음의 리모컨이라고 하겠다.

김동완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summerdog@grapecom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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