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교회」서 「베푸는 교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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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교회의 사회복지 기여가 선교 1백주년을 맞는 한국교회의 중요 당면과제로 새삼 강조되고 있다. 기독교계가 교회쇄신을 위한 자체정화에 이어 제창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업 전개의 구체적 내용은 「1교회 1자선단체 운영」. 교회 복지사업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최근 숭전대 교회지도자 사회사업연수회와 한경직목사의 8·15광복절 설교등을 통해 거듭 촉구됐다.
교회는 사회복지의 기초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 교회가 가진 막대한 물질적·정신적·정서적 복지요소들을 동원채사회복지 선교에 정열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사회를 위한 교인의 힘을 개발, 그늘진 사회의 응달을 비추는 따뜻한 햇볕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기독교 근본교리인 큰 「사랑의 실천」이며 새롭게 대처해야할 한국교회의 사회선교라는 것이다.
한목사는 『우리사회에는 교회를 향해 도움을 바라는 손길들이 많이 있다』고 전제하고 재소자 가족 돌보기·노인복지등에 이바지할 「사랑의 실천」을 호소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의 기적적인 성장을 이룩했는데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데 인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목사는 가장없이 흔들리는 재소자가정은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교회가 돌보는게 마땅하다고 역설했다.
이같은 일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뜻이며 교회의 올바른 사회봉사라는 것이다.
기독교기관이 6·25전쟁 이후 외국종교단체들의 후원을 받아 운영해온 많은 고아원 양로원등의 복지사업도 앞으로 3, 4년 후면 독자운영을 해야할 한계점에 와있다.
외국원조의 감소 및 종단은 한국교회의 부와 한국경제발전이 세계적인 공인을 받고있기때문.
한국교회의 사회복지사업 기여는 교회확장과 신자모으기에 쫓겨온 한 세기를 청산하고 성장의 은혜에 보답하는 「주는 교회상」의 정립과 교회본래의 사명을 수행하는 새로운 장을 여는 일대 전환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의 구제비 현실은 총교회예산의 0.2%, 인건비의 60분의1에 불과한 실정이다.
부내 1백년만에 세개가 놀라는 가격의 성장을 이룩했다고 자부하는 한국교회는 더 이상 「받는 교회」로서만 머물수 없다는게 양식있는 기독교계 인사들의 자성이다.
노인문제만 해도 인생의 지혜와 전통을 전하는 고귀한 노인의 가치를 일깨워주며 그 가치를 집약, 활용하는 일이야 말로 교회가 마땅히 감당해야할 일이라는 것이다.
교회가 오늘에 존재하는것은 노인(장노)들의 섬김과 증거의 열매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어린이 일변도」로 몰두해온 형식적 주일학교를 지양하고 노인교육 프로그램등을 새톱게 개발, 어린이 못지않게 노인복음 전파에도 눈을 돌려야한다.
이제 교회없는 고을이 없다. 교회는 노인들의 부승을 살리는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노인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노인문제를 모두 감당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적어도 교육 및 교회개방을 통한 정서적·정신적 복지를 제공하는데 인색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복음전파」를 위해 있는것이지 「구제기관」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자선이나 복지사업도 넓은 의미의 「복음」임에 틀림없다.
이제 복음과 구제의 이원론을 따지는데 급급할 필요는 없다.
한국교회는 총예산의 쥐꼬리만한 부분을 이웃 사람에 썼다고 생색내는 인색한 부자의 자세를 하루속히 떨치고 성장의 실력을 떳떳이 과시해야 한다. 그리고 예산과는 달리 이웃돕기 헌금을 따로 거두어 내는것을 능사로 하는 관행도 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지도자 사회사업연수회는 『사회선교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여러 형태일수 있겠지만 교회소유의 막대한 복지자원은 사회를 위해 아낌없이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교회의 사회복지사업 기여는 선교 2세기를 맞는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람을 갈망하는 민중의 친구로서 이땅의 「빛과 소금」역할을 다하며 영원히 존재하느냐, 아니면 민중으로부터 배반을 당하고 말 것이냐를 가름할 저울대가 될 것같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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