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의 戰時대비법을 우려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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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이 북한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를 상정한 이른바 전시대비 입법안(유사법제 3개안)을 마련했다. 2차 세계대전 도발국으로 우리를 포함한 이웃국가들에 막대한 피해를 준 일본의 과거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이 법안의 통과에 대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과거엔 재군비에 대한 논의 자체마저 금기시할 정도였던 일본 중의원이 90%가 넘는 압도적 지지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니 충격적이다.

최근 들어 일본은 자위 범위를 자국 영토에서 주변 사태로까지 확대하려는 일관된 경향을 보여와 주변국들의 의혹과 우려를 사왔다.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망령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우려와 불신 때문이다.

유사법제가 시행될 경우 전수(專守) 방위를 원칙으로 해온 일본의 안보 방위 정책은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또 중국과 북한 등을 자극해 동북아 안보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고 긴장을 조성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일본의 진보적인 시민단체들도 이 유사법제가 과거 전쟁때의 '국가총동원령'을 연상시키는 '전쟁준비 법률'이라며 반대해 온 것이다.

이미 일본은 첨단무기와 국방비 규모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런 일본이 주변국의 상황까지 상정한 유사법제를 정비한 것은 결국 평화헌법의 개정으로 가는 수순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본이 북핵위기 등으로 자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방어적 조치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변국을 위협하는 수준이 된다면 동북아의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이 지역은 무력경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이는 일본이 과거 전범국가 이미지를 아직 완전히 불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일 미군의 역할은 주변국의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

일본은 군사대국화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주변국에 평화를 지키고 사랑하는 나라라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한다. 전쟁범죄에 대한 진정한 참회가 앞서야 한다. 반성 없는 자의 무력 증강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