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이즈미 신사참배에 대한 미국의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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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한 서한을 주미 일본대사에게 보냈다. 토머스 시퍼 주일 미 대사도 "신사참배는 중국.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큰 우려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취해 온 미국이 이제는 일본에 '할 말은 해야겠다'는 입장 선회로 보여 주목된다.

하이드 위원장은 신사참배에 대한 일본의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했다. 무엇보다 도쿄 전범 재판이 '승자의 정의'가 아니었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또 '야스쿠니는 전범 합사로 군국주의 성향의 상징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는 일본이 이 재판을 '승자의 정의'로 보고 유죄 판결 받은 사람들이 전범이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데 대한 부당성을 지적한 것이다.

이 같은 미국의 지적에 일본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그동안 한.중의 항의를 일본은 일소에 부쳐왔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패전 60주년에 즈음한 담화에서 과거 일본의 침략에 대해 사죄하고 "한국.중국과 함께 지역 평화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두 달여 만에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침략에 대해 사죄한다면서 군국주의 일본의 A급 전범은 추모하는 이중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특히 그는 전몰자 추도 방법을 어떻게 할지는 다른 나라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는 오만함도 보였다.

일본 지도층의 이런 태도의 근저에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만 잘 유지하면 동북아에서 눈치 볼 일이 없다'는 인식이 작용했다고 본다. 그래서 미국의 보호 우산만 신경 썼지 주변국은 백안시했다. 그러한 일본의 외교 인식에 미국이 개입한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동북아에서 한국.중국과 소원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특히 일본의 침략사라는 확실한 범죄를 미국이 편들 이유가 없다. 일본은 미국이 왜 침묵을 깨고 따끔한 충고를 했는지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일본은 더 이상 주변국의 상처를 다시 헤집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