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건보 전문가집단까지 등 돌리게 한 어설픈 복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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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의 건강보험 개혁 중단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 급기야 개선안을 짰던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의 이규식 단장이 비판 성명서를 내고 전격 사퇴했다. 위원들도 문형표 장관의 오찬 요청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교수와 위원들은 건강보험의 최고 전문가들이다. 국민에 이어 전문가 집단까지 정부에 등을 돌렸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가슴이 답답하다.

 그런데도 정부의 카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저소득층 지역건보 부과체계를 일부 손보겠다는 것이다. 종합소득 자료가 500만원이 안 되는 599만 세대가 대상이다. 성·연령·재산·차를 따져 소득을 추정(평가소득)할 때 적용하는 기준을 완화하려는 것이다.

 정부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 부담의 일부 완화가 문제가 아니다. 평가소득 제도 자체가 반(反) 서민적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갓난아이 한 명이 태어나자마자 3560원의 건보료를 매긴다. 19세에서 20세가 되면 건보료가 2.8배로 뛴다. 차의 재산가치를 너무 높게 잡아 상용차도 1만원 정도가 붙는다. 재산·차를 따져 평가소득을 산정하고 나서 또 재산·차에 건보료를 매긴다. 이중 부과다. 계산방식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건보공단 직원들도 헷갈릴 정도다.

 기획단의 처방은 평가소득 폐지다. 대신 소득(자료)이 없는 저소득층에 한해 일괄적으로 정액 건보료를 매기자고 제안한다. 재정 손실은 종합소득이 있는 고소득 직장인과 고소득 피부양자의 건보료를 올려 벌충하기로 했다. 피부양자 중 소득이 2000만원이 넘는 사람만 19만 명이다. 또 연금소득이 2000만원 넘는 퇴직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직원이 약 16만 명에 달한다. 일반 국민에 비해 연금도 많이 받으면서 건보료는 무임승차하고 있다. 특혜다.

 정부의 미세조정 방침은 언 발에 오줌 누기도 안 된다. 제도만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기획단이 제시한 안을 토대로 근본 개혁에 즉각 나서라. 건보료는 전 국민의 98%가 당사자다. 세금보다 훨씬 무섭다. 연말정산이 강풍이라면 건보료 헛발질은 태풍 그 이상이다. 어설픈 미세조정으로 태풍을 막을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