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기 처리 실례」 굳어진 셈|정부, 중공 미그기체·조종사 처리의 배경|시비의 여지없는 주권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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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공 미그-21기 망명사건은 사안자체의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공식발표 때까지 일체 함구령을 내릴정도로 신중히 대처했다. 중공도 침묵으로 버틴 작년의 오영근씨 사건 때와는 달리 이례적으로 사건발생 이틀만에 비공식적이나마 조종사와 기체의 송환을 요구했고 자유중국도 같은 요청을 해와 우리정부의 처리방안이 국제적 관심사가 돼왔다. 사건 6일만에 일단락된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의 처리방안과 그 배경, 그리고 자유중국 및 중공의 반응등을 종합해본다.
국제법상 「영토적 비호」해당
○…이번 사건은 그 처리에 있어 국제협약상 엄격한 제약을 받는 지난 5월의 민항기사건과는 달리 행위주체 및 수단이 군인과 군용기라는 점에서 우려의 완전한 주권관할권행사의 대상이다. 말하자면 주권국인 우리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항이다.
게다가 지난해 오영근씨의 미그-19기 사건 때 조종사는 항공법과 출입국관리법위반혐의로 입건, 기소유예처분한 뒤 본인의사에 따라 자유중국으로 보내고 기체는 남겨놓은 선례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대응책도 별반 어려운 문제가 없었다. 지난 번 오영근씨 사건 때는 76년 일본에 불시착 망명했던 소련공군 「벨렌코」중위의 미그-25기 사건에 대한 일본정부의 처리방안이 주요 선례로 참고됐다.
사건의 단순성으로 처리가 어려웠던 것도 아니고 오래 끌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정부는 지난 9일 김상협 국무총리주재로 열린 안보장관회의에서 처리방안을 이미 확정해 놓고 발표만 13일에 하기로 늦추어 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처리방침이 일찌감치 결정됐는데도 발표시기를 늦게 잡은 것은 손씨에 대한 사실조사와 중공측의 있을지도 모를 반응 등을 고려해서였던 것 같다.
정부가 손씨를 사법적 처리를 거쳐 그의 희망대로 자유중국으로 보내기로 한 조치는 정치적 동기로 망명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인도주의원칙에 따라 이를 허용하는 확립된 국제관행, 국제법 및 세계인권선언 등에 따른 당연한 처리결과다.
이는 『자국 영토내에 들어온 망명인은 영토주권을 발동, 영토국의 자유재량에 속한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에 따른 것으로 이를 국제법에서는 「영토적 비호」로 설명한다.
또 정치범은 아니나 정치적 박해를 받거나 정치적 신조를 달리함으로써 다든 국가에 피난한 정치적 난민에 대해서는 퇴거를 강제하거나 본국에 송환치 않고 이를 보호하는 것이 1차대전이후의 확립된 국제법상원칙이다.
이와 관련, 세계인권선언은 『누구든지 박해로부터 보호를 타국에 구하고 이를 향유할 권리를 갖는다』고 했고 이 원칙은 67년 유엔총회에서도 재확인된 바 있다.
다만 기체에 대하여는 불법영공침해 및 불법입국에 대한 증거물로서 우리의 영토주권에 귀속되기 때문에 일단 이를 보존키로 한 것이다. 따라서 그 처분은 완전히 우리의 자유재량에 속한다.
그러므로 기체반환에 관한 절차를 중공측과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정부의 시사는 어디까지나 양자관계를 고려한 외교적 호양정신의 발로입 뿐이다.
지난해 오영근씨 케이스 때 정부가 선례로 참고했던 「벨렌코」중위의 경우 일본정부는「벨렌코」중위를 영공침해·불법입국 등의 혐의로 입건해서 기소유예처분을 내려 미국에 보내고 기체는 해체조사 후 소련에 송환했다.
그때 일본은 기체를 일단 「벨렌코」에게 반환하고 그로부터 다시 그 처리를 일임받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기체에 대한 해체조사중 있을지도 모를 소련의 소유권 주장에 대항할 법률적인 점유권까지 확보해두는 세심함을 보였었다.
자유중국 대단한 관심 보여
○…사건이 발생된 7일 하오 자유중국정부는 즉시 조종사와 기체의 자국인도를 한국정부에 요청했다.
손씨의 인적사항이나 탈출동기에 대해 우리 정부가 함구하고 있는 동안 대만언론들은 서울소식통을 인용, 세세한 면까지 보도함으로써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또한 중공측도 이번에는 사건발생 이틀만에 지난번 제3국을 통했을 때와는 달리 외교부대변인의 기자질문에 대한 답변형식을 통해 직접 사실확인과 함께 기체와 조종사의 반환을 요구해 주목을 끌었다.
그래서 지난 민항기 사건 때의 한·중공간에 나온 합의각서 9항의 긴급사태 시 상호협조약속이 이번에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지 모른다는 관측이 한때 나돌기도 했으나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 가망성은 엷어져 가는 느낌이다.
정부가 처리방안을 공식발표 시까지 일체 함구키로 한 배경 역시 혹시 있을지도 모를 중공측의 반응과 그에 따른 우리의 대응에 대한 행동의 폭을 스스로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추측된다.
정부의 이같은 신중한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김종곤 주 자유중국대사가 손씨는 곧 대북으로 인도될 것이라고 했다는 외신보도로 이범석 외무장관의 격노를 샀다는 후문이다.
군용기·군함처리 큰 차이
○…군용기와 군함은 다같은 국유재산이고 비슷한 행위수단이지만 타국영역의 통과 및 그 침해에 따른 처리방안은 국제법과 국체관행상 현저히 다르다.
군함은 사전통고(한국의 경우 통과 3일전까지 외무장관에 통고)로 타국 영해에 대한 무해통행권이 인정되나 군용기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항공기(군·민용)는 영공보다 훨씬 범위가 넓은 타국의 비행정보구역마저 당사국의 사전허락 없이는 통과할 수 없는 엄격한 제약을 받는다.
최근 일본과 중공민항기가 우리나라 제주남방의 우리비행정보구역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의 동의를 구한 것이 그 좋은 예.
군함이 12해리 영해를 무단 침범했을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주권면제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군함 소속국에 되돌려주는 것이 관례다. 우리 영해법은 위반한 외국군함이 △무기를 사용하여 훈련 또는 연습을 했거나 △항공기의 이·착함 또는 탑재를 했을 경우에 한해 승무원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정상이 중대한 경우 당해 함선을 몰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있다.
그러나 항공기에 의한 영공칩범에 대하여는 특히 군용기의 경우 그 기동성이나 위험성에 비추어 즉각적이고 엄중한 대처가 상례로 돼 있으며 몰수하는 선례도 많다. <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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