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이틀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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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2005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19일 개막한 가운데 한 관람객이 주빈국관에 전시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직지(直指)를 신기한듯 쳐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의 고도 프랑크푸르트에서 '문화강국' 한국의 이미지를 심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19일 개막한 세계 최대 책의 잔치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대된 도서전은 23일까지 계속된다. 도서전 주빈국관 조직위원회 황지우 총감독과 위르겐 보스 도서전 위원장을 개막식 직후 중앙일보가 따로 만났다.

"서양인의 심성 깊은 곳에 한국 문화 스미는 계기로"
황지우 주빈국관 총감독

도서전 주빈국관 조직위원회 황지우 총감독은 18일 "한국 문화의 영향이 서양에 뿌리 내리는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주빈국관 준비를 하면서 염두에 뒀던 것은.

"유럽에서 아시아하면 일본, 중국만 떠올린다. 우리는 그늘에 가려져 있다. 그림자 벗기가 목표다. 궁극적으로는 한국 담론이 발생하길 바란다. 한국 취향(taste)이 생기길 원한다. 1870년대 일본이 파리 엑스포를 통해 일본 문화의 영향을 서양에 뿌리내렸다. 120년이 흐른 한국에도 바야흐로 그런 기회가 왔다. "

-주빈국 행사가 앞으로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수상 가능성을 높이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일본, 포르투갈, 헝가리 등 여러 나라가 주빈국으로 참여한지 3~4년 만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번역문제가 선결되야 가시권에 들어올 것이다. 대략 10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현지 언론들이 주빈국관에 선보인 유비쿼터스 북 등 첨단정보 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 독일이 정보통신 기술(IT)면에서 우리보다 몇 발자국 뒤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아시아 신생국에 대한 위기감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이 첨단 정보기술을 문학장르의 텍스트와 접목시켜 문학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에 주목하고 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프랑크푸르트 그뤼네부르크 공원에 조성되고 있는 한국 정원이 현지인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원은 도서전을 계기로 한국의 기억을 영원히 남기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여러 가지 행정절차 때문에 9월에야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독일인들은 한국인들의 불가사의한 순발력에 경악하고 있다. 불과 수주만에 연못과 석축을 정교하게 짜내는 것을 보고 묘기로 생각하고 있다. 독일인의 심성과 취미에 한국 문화를 스며들게 하자는 행사 취지에 딱 맞아 떨어지는 성과이다."

-북한이 참가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막판까지 노력했다. 7월15일 남북작가회의에 참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특히 개막전 학술회의에 북한의 학자와 작가 2명을 초청해 성사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9월 중순 방북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통해 북측이 거부의사를 통보해왔다. 작가들이 망명이라도 할까봐 북한 당국이 불신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산업 국가로만 알았는데 금속활자 발명 알고 놀라"
위르겐 보스 조직위원장

"한국이 구텐베르크보다 앞서 금속활자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18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을 하루 앞두고 주빈국관을 둘러본 조직위원회 위르겐 보스 위원장은 사뭇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한국이 문화국가로서보다는 휴대전화,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산업국가로만 세계에 알려져 있다"며 "이번 도서전은 한국이 문화분야에서도 대단하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빈국 참가로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

"중국.일본과 다른 문화 독자성이 한국에 있다는 점을 알리게 될 것이다. 주빈국이 되면서 번역 소개된 한국작품 수가 이전보다 3~4배 늘었다. 덕분에 세계의 많은 독자들이 한국문화를 접하고 직접 읽게됐다. 나 자신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문화강국으로서의 한국 이미지를 새로 느낄수 있었다. 이번 행사를 취재하는 1300여명 취재진도 나와 같은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유력한 후보였던 고은씨가 올해 노벨상 수상을 못해 아쉽게 생각한다. 도서전은 76년 이후 주빈국을 선정해 소개해 왔다. 여러 나라가 주빈국이 된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한국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지난 6개월간 집중적으로 한국문학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고은 시인과 이문열 작가의 작품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작가들의 작품에는 역사성이 녹아있다. 군사독재,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검열 등 불행했던 정치적인 경험과 시대의 아픔이 잘 드러난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때 주빈국 한국관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유비쿼터스 북 등 첨단 정보기술을 문학과 접목했다는 점이 이채롭다. 또 전통과 현대를 오가며 흥미롭게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있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

-이번 도서전에서 중점을 두는 활동은.

"도서전의 3가지 활동축은 비즈니스.문화교류.정치교육이다. 출판업계의 경제적인 성공을 돕기 위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나 오디오 북 분야에 더욱 관심을 쏟고 있다. 또 국제적인 저작판권거래는 물론 영화제작이나 문화상품의 상업적인 거래까지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도서전 기간중 3000개가 넘는 문화이벤트가 열린다. 이밖에 100여개국의 출판 동향과 학술정보 등이 소개된다. 도서전은 또한 작가들의 언론자유와 인권신장을 위해서도 노력한다. 터키 작가가 독일평화상을 수상하게된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이다."

프랑크푸르트=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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