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 교과서가 이념서적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재정경제부.한국은행.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의.한국개발연구원 등이 학계에 의뢰해 초.중.고 경제 관련 교과서 114종을 분석한 결과 446곳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잘못된 서술이나 개념상의 오류, 낡은 통계에 따른 부적절한 표현이 태반이지만 사소한 실수로 그냥 넘기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우선 반기업 정서를 부채질하거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비인간적 제도로 묘사한 대목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시장은 돈이 투표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경쟁적이며 비인간적" "가난이 개인의 책임이나 운명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제도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인식이 지배적" "가족끼리 외식을 즐기는 모습에서…이기주의가 엿보인다"는 등의 표현이 왜 교과서에 담겨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엄밀하게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함부로 쓴 경우도 적지 않다. "60년대와 70년대 경제성장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이룩된 것" "재벌은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늘리고…재벌을 개혁하고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 "전문 경영인 체제의 기업만이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등이 대표적이다. 학계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사안을 이처럼 단정적으로 기술하는 용기가 놀랍다.

교과서는 우리 세대의 지식과 경험을 후세에게 전하는 기본 그릇이다. 객관성.타당성과 함께 중립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왜 이상한 개념을 들먹이며 설익은 논의를 학생들에게 설파하려 하는가. 경제 교과서는 경제의 기본 개념을 알리면 된다. 윤리 교과서와 혼동해 경제를 윤리로 재단하려 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편향적 사고를 심어주는 이데올로기적 접근은 금물이다. 교육부는 이번에 지적된 사항들을 다음 교과서부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