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정가에 새 회오리 "섹스테이프 정말 있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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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레이건」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이 그룹섹스를 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발견됐다는 보도는 여름휴가철을 맞아 한산한 워싱턴정가에 큰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12일 그 비디오테이프를 봤다는 유일한 인물이 밤사이 그걸 도난 당했다고 밝힘으로써 모든 관계자들과 이 사건을 쫓던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런 테이프가 당초부터 없었지 않았느냐는 의문까지 제기되고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7일 할리우드의 한 아파트에서 「비키·모건」(30)이라는 단역배우의 시체가 발견된 데서 비롯됐다.
시체가 발견된지 몇시간후 「마빈·팬코스트」(33)라는 남자가 그 지방경찰서에 나타나 자기가 잠자는「모건」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숨지게 했다고 자수했다.
할리우드주변에 흔해빠진 한 배우지망생의 죽음은 상례를 깨고 전국 유력신문에 즉각 보도되었다. 이유는 「모건」이 12년 동안 「레이건」 대통령의 막역한 친구이며 백만장자인 「앨프리드·블루밍데일」의 정부(情婦) 였음을 자칭하면서 지난해 1천1백만 달러(약85억원)의 위자료소송을 걸어 이미 화제가 되었던 여인이기 때문이다.
「를루밍데일」은 백화점체인과 디너클럽, 크레디트카드회사를 운영하다가 지난해 8월 66세에 암으로 사망했다.
이 소송에서 패소한 「모건」은 「블루밍데일」이 살아있을 때 그로부터 받은 벤츠승용차와 보석을 팔아 근근히 생활해왔는데, 죽기 3주전부터 동거해온 「팬코스트」에 살해당한 것이다.
그룹섹스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의 존재는 「팬코스트」의 변호를 담당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로버트·스타인버그」변호사의 발설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정체를 밝히지 않은 한 불론드 머리의 젊은 여인에게서 40분 길이의 총천연색그림이 녹화된 3개의 테이프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 여인은 『이 테이프를 가지면「팬코스트」변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테이프 속에는「모건」과 「블루밍데일」을 포함, 6명의 남자와4명의 여자가 어울려 가학성-피학성 (새디즘-매조키즘) 성행위를 줄기는 모습이 담겨져 있으며 이중 『2명은 대통령과 가깝고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대사급 관리들이며 1명은 하원의원, 나머지 2명은 저명한 실업가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타인버그」변호사의 주장은 처음부터 의문점이 많았다. 그는 자기가 법무성소속의 한 법률가와 함께 이 테이프를 틀어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성에서는 그런 보고를 소속직원으로부터 받은바 없다고 확인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 테이프를 직접 본 사람은 「스타인버그」변호사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그는 이 테이프를 『백악관에 제출하겠으며 백악관이 받지 않겠다면 이를 태워버리겠다』면서 『「레이건」 대통령 외에는 아무에게도 보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백악관대변인은 그가 이 테이프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온바 없다고 말하고 『만약 그 테이프가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태워서는 안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비디오테이프소동은 지금까지「스타인버그」라는 변호사의 말 한마디에 미국의 모든 언론과 백악관 및 관심있는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는 셈인데 그는 발설 후 하루가 지난 뒤부터 휭설수설 하는 등 모호한 태도를 보여 의혹을 사고있다.
12일 아침 그는 자기아내가 법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 테이프처리에 관해 상의하고 싶다고 제의했노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조금 후 그의 아내가 기자들 앞에 나타나 자기는 그런 전화를 한적이 없다고 밝혔다.
「스타인버그」는 또 자기가 백악관고문변호사「프레드·필딩」과 l2일 아침 5분 동안 통화했다고 말했는데, 백악관대변인은 백악관에서 그런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이밖에도 테이프가 있는 곳을 모른다고 했다가 이내 자기사무실에 두었다고 말하는 등 번븍하기도 했다.
비디오테이프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문제의 발설자인「스타인버그」가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명망있는 형사사건전문변호사라는 점 때문에 더욱 갈피를 잡기 어렵다.
그가 만약 없는 비디오테이프를 조작해서 말썽을 일으켰다면 왜 자신의 명성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할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조작했을까.
반대로 그가 진실을 말했다면 누가 그의 사무실에 감추어둔 테이프를 훔쳐갔을까.
그런 의문은 「스타인버그」의 주장이 허위였다는 점이 분명히 밝혀지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건」은 지난해 위자료소송때 법정진술에서 「블루밍데일」의 가학성 성도착증세를 구체적으로 밝혔었다.
그 진술에서 「모건」은 자기가 12년 동안 「블루밍데일」의 가학성변태성욕증을 치료하는 치료사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 치료과정에서 그녀는 「블루밍데일」이 여인들을 발가벗겨 넥타이로 칭칭 동여맨후 방바닥을 기어가게 하고 자기는 그들의 등에 올라앉아 여인들을 때리는 것을 자주 봤다고 말했다.
사라진 테이프 속에는 그런 모습이 들어있을까. 또 거기에 참석했던 「레이건」의 고위 보좌관은 누구일까. 아니면 그런 모습은 정신착란증에 걸린 한 변호사의 법적상상력에서 나온 환상일까. 수수께끼의 실마리는 끝없이 얽혀있다.
【워싱턴=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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