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예」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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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주도」 강좌는 말만 들어도 궁금하다. 노동부는 근로청소년에게 그런 공개강좌를 벌일 모양이다.
술마시는데 도까지 찾으면 술맛 없다고 할지 모른다. 노자, 장자의 말을 빌면 도는 「우주만물의 근원」인데-. 하긴 주덕이라는 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심신을 바르게 갖는다는 뜻의 덕이다.
그보다는 역시 유가의 말대로 주례라는 쪽이 듣기에 순하다. 조선왕조 시절의 「향음주례」라는 의식은 그런 뜻에서 주례의 거울이다. 오경의 하나인 한서「례기」에 적혀 있는 고례의 절차를 그대로 밟은 전례다.
우선 유가에선 관·혼·상·제·상견례와 마찬가지로 주례를 육례의 하나로 꼽았다. 그만큼 술마시는 의식은 격이 높다.
손님을 청해서 술을 마시고, 손님이 돌아가기 까지는 무려 13단계의 예의 절차가 필요하다.
술을 마시기 시작할 때도 요즘 같은 토스트가 아니다. 시조 한수를 읊는 운치를 잊지 않았다. 이를테면 주예가다.
-사슴들은 무리지어 노래 부르며/들에서 풀을 뜯는데/이처럼 반가운 손님 맞아/술(密)과 금(琴)을 뜯으니/오늘의 이 줄거움 끝이 없어라/여기 향기 있는 술 있으니/손님 마음 또한 즐겁게 하리(시경「소아」녹오장).
선비들의 사교파티였던 향음주례에선 술 한잔을 권하는데도 손님과 주인은 무려 1백번의 절을 했다(일헌지예, 찬주백배) 권커니 잣거니 연신 절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에 앞서 의관을 갖추어야 하는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와기」 (웃도리) 벗고 시작하는』, 그런 식이 아니다.
겉치레만 요란한 것이 아니다. 주인은 반드시 대야와 물을 들고와 손님이 보는 자리에서 술잔을 씻는다. 또 술을 권할 때마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은 손과술잔을 정갈한 물에 씻어야한다.
주비는 그러니까 서로 감사하고, 정결한 분위기로 시종된다. 술자리의 사람들이 몇순배 돌고 나서자리를 바꾸어 앉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예의다. 번거로와보이지만 일리가 있다. 질펀히 한자리에 앉아 곤드레 만드레가 되는것을 스스로 삼갈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주례를 요구하면 아무리 금준미주(금준미주)를 권해도 10리는 도망갈 것이다. 그까짓 술마시는데 무슨 법도가 이리요란하단말인가. 그러나 세상엔 바다에 빠져 죽는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다. 과음, 난음은 물론이고 추태(醜態)에 의한 인격의 파단도 하나의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너무 많이 마실수는 있으나 알맞게 마실 수는 없다』는 말은 역설이 아니다. 오죽하면 옛 군자는 술을 광락(소학)이라고 했겠는가. 술에는 안주 못지 않게 예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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