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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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백악관의 뒷문 옆골목길에 사는 거지가 있다는 것은 참 아이로니컬하다.
세계에서 제일 강국이고 부국이며 복지정책도 풍성한 미국에이게 왠일인가.
물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엔 거지가 우글거린다.
유엔의 통계로는 총인구 9천2백만명중 절반 이상이 국제적인 생계유지선에 미달하는 수입으로 살고 있다. 물론 그들은 가난하지만 모두가 거지는 아니다.
그러나 구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비중도 엄청나다. 수도 대카의 인구 2백50만명중 10%가 구걸로 산다는 공식집계도있다.
구걸을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회계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거지의 정신상태와 습성이 몸에 밴 국민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정육해서 살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걸생활을 편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혹 정부가 직업을 구해줘도 그걸 탐탁하게 생각지 않는다.
더 어이없는 것은 거지가 범죄와 연루되는 경우다. 한탕 할만한 집을 염탐했다가 범죄조직에 알려주거나 처녀들을 인신매매조직에 넘겨주곤 한다. 집단화된 거지는 사회불안의 요소가 된다.
부자나라 미국이나 사회주의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프랑스에도 거지가 있다. 물샐틈 없다는 사회복지제도로도 구제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미국의 거지는 대부분 정신이상자, 체질적 부랑자, 알콜중독자다. 날품팔이 일조차 할 수 없거나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작년에만 2천9백10억달러(2백32조8천억원)의 예산을 복지사업에 쏟아 넣어도 아직 2백만명의 집없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보장금이나 실직수당도 이들은 받을 수 없다. 자선단체의 숙소도 넉넉히 이용할 수 없다.
과거 자기 수입에서 복지기금에 월부금을 납부한 일이 있어야 한다.
요는 자기구제의 노력이 있어야한다. 게으름이나 무책임은 나라가 구제하지 않는다는 「징벌적」원칙이 미국의 복지정책엔 엿보인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날품팔이라도 실업수당읕 받을 수 있기 위해선 일정한 노동실적이 있아야 한다. 음식점의 찌꺼기 음식이나 얻어 먹고 편하게 지내자는 생각으로 부랑하는 사람도 있지만 행인에서 구걸하는 일은 드물다.
거지에 대한 사회적 거부반응도크다. 어린 중학생이 부랑자를 무차별 학살한 사건까지 생길 정도다.
우리우리에도 거지는 있다. 전처럼 추운 겨울 얼어붙은 땅 위에서 발가벗고 구걸하는 앵벌이는 잘 눈에 띄지 않지만 변두리의 지하도에서나 전철 찻간에서 가끔구걸하는 사람을 만난다.
몇푼의 동전을 던져주는 이도있고 무관심한 이도 있으며 험악함을 표하는 이도 있다.
우리의 「거지」관은 사회발전과 함께 방황하는 단계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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