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대량 외환도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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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내에서 골프장을 경영해온 한 재일교포의 외화밀반출사건은 적어도 네가지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첫째는 현행 외환관리법상의 허점이 노출된 점이다. 지금까지의 불법적인 외화도피가주로 달러나 엔화 등의 통화나 여행자수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온데 비해 이번 사건은 외국은행발행의 수표라는데 초점이 모인다.
전자의 통화나 여행자수표는 거래지급수단으로서의 유통성이 강하기 때문에 불법거래나 밀반출에 용이하게 이용될 수 있는 반면 그만큼 현행 외환관리법상의 견제장치도 단단한 평이다.
그러나 외국은행의 수표는 국내유통성이 적어도 최근까지는 매우 낮아 외화도피의 수단으로서는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되어 왔다.
그래서 현행법에서도 엄격한 관리대상에서 지금까지 제외해 온 것이다.
외환관리규정상의 외환집중의무가 변제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은 이런 현행법상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최초의 대량외화도피사건으로 기록될만하다. 문제는 이런 외환관리규정상의 허점을 고치는 일이 되는데, 그에 따라 파생되는 여러 부작용 또한 없지 않다. 우선 국내 통용도가 낮은 외환지급수단까지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일 자체가 결코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비거주자의 현지통용외환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그의 반입과정부터 추적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방화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통용도 낮은 지급수단까지 규제하는 것은 외환자유화의 기본방향과 조화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정책당국의 설명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렇다해도 외국은행 수표가 현실적으로 외화도피의 엄연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진 이상 어떤 형태로든 관리규정을 보완할 필요는 있다. 반입과정부터 추적하기가 어렵다면 적어도 사후적이나마 반출의 합법성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만들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미리 선고된 수표만 반출을 허가하는 등 적절한 규정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 문제는 이 같은 외국은행 발행수표의 국내 수집과 거래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져온 흔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수사당국의 추정으로는 이런 수표가 주한외국인 상사 등에서 유츨되거나 국내 환전조직에 넘겨주기 위해 밀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추정은 이들 수표가 국내시장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점에 비추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런 수표입업의 원천적인 루트를 봉쇄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영업활동에 위축을 주지않는 범위안에서 주한상사들의 협조를 얻을 필요가 있다. 불법적인 국내환전조직은 철저히 수사히 그 전모가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세째로 지적돼야 할 문제는 이른바 재외교포들의 투자유치와 관련된 것이다. 해외에서 땀 흘려 각고한 과실을 국내에 반입하여 모국의 경제발전과 자신의 성취욕을 드높이는 수많은 해외실업자들이 있지만 이번 사건처럼 오히려 모국에서 거둔 부를 불법적으로 해외에 반출하려는 자세는 사회적인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네째의 문제는 이번 사건의 바탕이 되었던 골프장의 운영을 둘러싼 난맥상이다. 엄연히 그것을 관장하는 부서가 있는데도 골프장운영을 둘러싼 엄청난 비리가 가능했는지도 궁금하거니와 놀라운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다튼 많은 경우에도 유사한 불합리가 보편화돼 있다는 사실이다.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관리지도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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