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에 밀린 증산정책|보리수매가 작년수준 동결의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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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혹시 최종결정단계에서 몇 푼이라도 오르지 않을까 하던 올해 하곡수매가는 결국 작년가격 속결로 낙착됐다. 정부가 61년 본격적으로 양곡을 수매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 파격적인 결정에 대한 정부의 설명은 『안정된 물가구조 속에서 실익 있는 수매가격을 책정하는 측면과 보리작황, 정부재정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했다』는 얘기다.
「물가구조」라는 것은 ▲금년도 도매물가가 지난 25일 현재 작년 말 대비, 마이너스 1·2% ▲소비자물가는 1·7%수준이며 ▲가축류를 제외한 농가구입가격이 1·8%밖에 으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보리작황」은 작년에 비해 단보당 10%가 증수돼 그만큼 생산비가 지원되지 않았겠느냐는 주장이다.
그리고 「정부재정사정」이란 쌀과 보리를 『농민들로부터 비싸게 사서 소비자들에게는 싸게 파는데 따라 발생하는 양특적자가 1조2천4백억원에 이르렀다』는 하소연이다.
그러나 정부가 열거한 이같은 설명에 대해 농민들은 납득하지 못하는 설명이 또 몇 가지 있다.
우선 생산비 문제다.
생산비부터 따져서도 작년의 경우 농수산부가 25일 국회농수산위에서 의원들 요구에 마지못해 내놓은 자료를 보더라도 과맥은 가마당 생산비가 3만1천7백11원이지만 대맥은 3만7천7백88원이나 돼 작년 정부수매가는 과맥 생산비의 88%선이다.
81년에는 가마당 4천2백5원의 손해를 농민들이 감수했다는 계산이다. 금년 생산비는 농수산부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일종의 대외비이지만 관계자들은 『작년보다 생산비가 적어졌다』고만 하고 있다. 설령 올해 생산비가 줄었다 하더라도 해마다 보리농사적자를 보아왔던 과거를 감안한다면 굳이 목청 높여 생산비절감을 외쳐댈 성질이 못된다.
둘째 물가문제. 물가안정은 우리 경제의 최대현안이고 최우선 과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리수매가격인상은 과연 물가안정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리가 도매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 10% 더 올려줄 때 도매물가에 미치는 상승요인은 0·3%에 불과하다. 반면 이때 생산량은 18·2%의 증산을 가져온다. 어떠한 품목이라도 물가억제마지노선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강박감과 획일성이 지나치게 드러난 게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
양특적자도 실은 매우 심각한 문체다. 보리는 68년부터 판매가격을 수매가격보다 낮춤으로써 양곡관리기금의 적자가 발생하게 되고 이때부터 이중 곡가제도의 부담이 누증되기 시작했다. 이를 메우기 위해 한은으로부터 차입한 돈이 작년 말 1조3천9백20억원에 이르러 주요 인플레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한번 더 생각해보면 양특적자는 정부가 양곡을 소비자에게 헐값에 판 데서 더 큰 요인을 찾을 일이지 농민에게 생산비를 보장해준 데서 생긴 것이라고 덮어씌울 수는 없는 문제다. 사실 보리판매가는 너무 싸다.
한사람이 한달간 먹는 보리쌀 값은 5백원도 안된다.
코피 한잔 값 정도다. 지난 시절 정부가 공업우선정책을 취하면서 불가피하게 택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이였겠지만 저임금을 위한 저 농산물 가격정책이 실행됐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데서 파생됐던 양특적자의 해소를 서서히 단계적으로 해결 할 수밖에 없는 부채다. 이 부채를 영세보리농가가 한꺼번에 지라고 한다면 충격은 크지 않을 수 없다.
혹시나 우려되는 것은 농업생산기반이 추호라도 흔들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이미 보리에 관한 한 문제는 노출 돼 왔다. 경작면적과 생산량이 우려 될 만큼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76년 맥류식부면적이 75만2천㏊이던 것이 작년엔 33만9천㏊가 됐고 생산량은 1천2백78만섬에서 5백43만섬으로 반감됐다.
어차피 정부가 적자를 전제로 한 양곡수매를 실시한 배려가운데 특히 보리는 소득재분배 또는 농가취로사업의 성격을 감안한 점이 없지 않았다. 올해는 모처럼 각종 물가가 안정되고 있어 차제에 저물가·「제로」인상을 목표로 한 의지를 강조해오고 있다.
이러한 물결에 따라 보리농사가 큰 실망을 안게된 만큼 정부는 보리의 전량수매는 물론, 다른 농가소득향상을 위해 배전의 배려와 시책을 강구해야만 농업기반의 지속적 발전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한남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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