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스프링쿨러'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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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얼마 전 의정부 아파트 화재로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 피해가 컸던 이유는 해당 아파트가 안전 규제가 느슨한 도시형 생활주택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물이 가까이 붙어 있는 데다 외벽은 가연성 스티로폼 단열재로 시공돼 있어 불이 쉽게 번질 수 있었다.

 건물에는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건축법상 11층 이상 건축물부터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하지만 불이 난 아파트는 10층짜리 건물이어서 이를 갖추지 않았다고 한다. 불이 난 뒤에야 정부는 6층 이상 건물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스프링클러(sprinkler)’는 화재를 대비하는 핵심 설비 가운데 하나다. 건물 천장에 설치된 이 장치는 실내 온도가 70도 이상 되면 자동으로 물을 뿌려 주기 때문에 화재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장비다. 이것이 있었다면 이번 화재도 지하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이 이렇게 쉽게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프링클러’는 작물이나 잔디에 물을 주는 데도 요긴하게 사용된다. 이 장치를 이용해 한여름 타들어 가는 농작물이나 잔디에 물을 뿌려 주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시원하다. 그런데 문제는 물을 뿌리는 장치이다 보니 ‘시원하다’는 뜻의 영어 ‘쿨(cool)’이 연상돼 그런지 ‘스프링쿨러’라고 부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언론 매체에서조차 ‘스프링쿨러’라고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스프링클러’를 우리말로 바꿔 쓰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대체어가 널리 사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우리말 순화용어로 ‘살수기(撒水器)’나 ‘물뿌리개’를 선정하고 사전에 올려 놓았으나 이 용어를 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살수기’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고 ‘물뿌리개’는 여러 가지 용도의 다른 형태가 있어 대체어로 마뜩하지 않은 탓이다.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는 외래어는 당연히 바꿔 써야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사용하는 경우엔 정확하게 표기해야 한다. ‘스프링쿨러’가 아니라 ‘스프링클러’가 맞는 말이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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