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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사는 한국인의 지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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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작년여름 한동안 역사교과서 파동을 치른바 있는 한일관계는 지난1월「나까소네」(중증근) 일본수상의 방한을 계기로 우호와 협력무드를 타고있다.
두 나라간에 걸린 큰 문제였던 경협이 타결되고 두 나라 지도자들이 빈번히 서울과 동경을 잇는 직통전화로 대화를 하고 의견교환을 하고있다는 사실은 한일협력시대의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일 두 나라의 「우호의 행진」의 대오에서 밀려나 한일우호무드의 큰 흐름을 타지 못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들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문제다.
두 나라 정부가,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에 대한 법적·사회적 차별대우를 완전히 폐지하지 않는 한 한일우호관계가 항상 후퇴하고 악화될 위험성이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여 81년 마침내 재일 한국인들의 처우에 관한 고위실무자회담을 열 수 있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오늘(14일), 서울에서 열리는 두 번째 회담에 우리가 비상한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는 것은 81년의 회담이 65년 한일국교정상화 때 체결된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에 관한 협정의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는 작업의 시작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현재 68만 명으로 추산되는 일본거주 한국인들의「발생원인」은 설명이 필요 없다. 그들은 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끌러간 사람들과 그 자손들이다. 싫든 좋든 그들은 일본에서 생활의 뿌리를 내려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체결된 뒤 52년4월에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단 한번의 국적선택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자동적으로 일본국적을 상실하도록 하는 법적 조치를 취했다.
그렇게 시작된 재일 한국인들의 불운은 65년 그들의 법적 지위에 관해서 체결된 한일 협정으로도 해소되지 못했다.
일본정부는 협정이 발효된 후 5년이 되는 7l년까지 한국인들의 영주허가를 신청 받아 일본 영주를 허가했다. 이론적으로는 일본이 협정에 따라서 할 일을 다했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5년이라는 기간동안에 영주권을 신청한 한국인은 40만 명에 불과했다. 일부 동포들의 인식부족, 그들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무지, 그리고 조총련의 방해공작 등으로 28만 명이 영주권신청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들 중 18만 명 정도가 82년 일본출입국관리법의 개정에 따라 이른바 특례 영주등록을 할 수가 있었다.
거기서도 누락된 10만 명의 우리동포들은 전혀 영주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일본에 임시로 살고있는 외국인과 같은 불안한 처지에 있다. 재작년의 첫 번째 회담이후 일본정부는 국민연금법과 아동 수당 법에서 국적조항을 없애고 외국인 등록의 대상이 되는 나이를 14세에서 16세로 올리고 국공립대학의 교원을 임명하는데 국적 조항을 없애고 앞서 말한 특례 영주등록을 허가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협정영주권을 신청하지 못한 한국인의 구제, 법적 지위가 보장 되어있지 않은 한국인 3세 이하의 항구적인 지위안정, 비 협정영주자 들에 대한 각종 차별의 폐지 같은 중요한 문제들이 미해결로 남아 이번 회담의 토의 대상이 된다.
일본정부가 한국인들이 5년마다 외국인등록을 경신할 때 지문을 찍게 하고, 외국인 등록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2O만엔의 벌금을 물리고 있는 것도 이번 회담에서 철저히 따지고 토의될 문제들이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은 다른 재일 외국인들과 사정이 다르다. 다른 외국인들은 비자를 받아 일본에서 사는 사람이요 그들에게 비자를 발급할 때는 그들의 재력이나 학력 또는 가정환경이 가부판단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비자를 가지고 일본에 간 게 아니라 일제에 끌려가 그 나라에 생활 근거를 마련한 사람들이다.
일본은 그런 한국인들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환경을 보장하고 인간다운 대우를 해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요시다」(길전)전 수상은 국회발언에서 재일 한국인을『사자 몸 속의 벌레』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한국인은 두통거리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재일 한국인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베르사유조약을 보아도 외국인의 주소지령유국의 국적을 추정하여 국적선택의 권리를 준다.
그 정신에 따라서 예컨대 이탈리아의 이디오피아인들, 독일의 폴란드인들, 프랑스의 알제리인들, 일본의 한국인들은 국제법상 똑같은 법적 지위를 누려야한다.
유독 일본이 재일 한국인의 처우개선에「소인」의 자세로 인색하게 구는 것은 한일관계의 앞날을 위해서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번 회담에서 일본은 대인다운 안목과 한일 우호의 정신으로 재일 한국인들의 처우개선에 관한 우리측의 요구를 경청하기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민족적 고통을 주는 한국의 분단도 그 주된 잭임은 일본에 있다. 패전국인 일본은 온전하게 나라를 유지하고 일제의 제물이던 우리가 분단의 고통을 받고 있다는 가슴아픈 사실이 더 이상 상기되지 않기 위해서도 일본에 사는 우리동포들의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 하루빨리 갖추어져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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