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탄생 100년 새롭게 찾은 시 ⑤ 서울에 두고 온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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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일어나자 미당은 황급히 피난을 간다. 해방 직후 이념갈등이 극심할 때 그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우파 활동을 했으며 전쟁 중에는 종군문인이 되기도 했다. 인민군에 잡힐 것을 대비해 늘 청산가리를 지니고 다녔다. 환청에 시달리는가 하면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아 청마 유치환의 부산 집에서 요양하기도 했다. 그리운 서울집 공덕동 301번지. 수수 심어 사운거리는 소리 듣고 싶어 지은 ‘청서당(聽黍堂)’ 택호. 그 집의 기억 속에 찾아드는 시심의 신(神)들. ‘안 잊히는 것들’ 가만히 불러내는 피난 중의 시인. 어느새 광복 70년, 전쟁발발 65년 되었네. <윤재웅·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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