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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려, 대한민국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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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뿐인가. 집 가진 게 죄가 되고, 재산 있는 게 족쇄가 되어 사실상 고위 공직에도 나갈 수 없게 만들겠다는 나라가 작금의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세금으로 움직이는 나라다. 국민 모두가 사는 형편이 나아져 당당하게 세금 내는 사람이 많아지고 또 많이 내는 만큼 우대받을 수 있는 나라여야 미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열심히 일하고 정당하게 재산 늘려서 세금 내는 사람을 대접하고 우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들면서, 오히려 일 안 하고 세금 안 내도 되는 사람들도 그럭저럭 살 수 있다는 식의 방향으로 나라 꼬락서니가 돌아가고 있다. 이런 대한민국에 누가 세금 내고 싶겠는가. 바로 이게 대한민국이 골병 드는 첫째 이유다.

더구나 꼬박꼬박 낸 피 같은 국민세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들여다보고 나라살림 살피라는 국정감사는 술집 여주인한테 누가 욕했느냐는 허접한 진실게임으로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나라살림이 아니라 삼성이란 특정 기업살림에 온통 관심이 쏠려 대한민국 국정감사가 아닌 삼성감사가 되어버렸다. 삼성공화국, 삼성공화국 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던 삼성은 어느새 뭇매 맞기에 정신없는 대한민국의 개가 되어버렸다. 대한민국을 먹여살린다는 삼성이 대한민국의 개 취급당하는 현실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게다가 정작 대한민국 국회가 나라 바깥에서는 펄펄 뛰는 삼성 붙들고 감사할 처지가 되는지, 바쁘게 일할 사람들 줄줄이 국감장에 불러다 세워놓고 벌 세우듯 몰아붙일 처지인지 되묻고 싶다. 삼성 문제는 국회가 제대로 만든 법으로 엄정하게 처리할 것을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걸 가지고 국민감정 자극하며 여론재판할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현안은 삼성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권고하듯 무엇보다도 조로(早老) 가능성이 농후해진 한국 경제를 되살리는 일이다. 그래서 국민이 일할 맛이 나게 하고, 기업가들이 기업 할 의미를 되찾게 하며, 군인들에게 나라 지킬 명분이 분명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할 맛, 기업 할 맛, 나라 지킬 맛을 주지 못한다는 게 대한민국이 휘청하는 둘째 이유다.

여기에 때 아닌 맥아더 동상 철거시비로 불거진 대한민국 뿌리 흔들기는 강정구라는 희대의 난객(亂客)이 뱉어내는 말 같지 않은 말들에 의지해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을 향한 충성의 맹세 달리기라도 하는 듯 내닫고 있다. 만경대정신 이어받자고 말할 때부터 익히 알던 강정구의 본색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을 용인하고 그를 불러 강연까지 시키는 작태다. 그러니 기고만장한 강정구는 자신을 사법 조치하면 대한민국을 유엔에 제소하겠다고 큰소리치기까지 하지 않는가. 물론 그만큼 대한민국은 허접해지고 우스워졌단 말이기도 하다.

더구나 공연 1회당 10만 명이 동원되는 북한의 집체극 '아리랑' 관람이 평양관광 필수코스로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고작 집체극에서 몰살당하는 군인들이 한국군이냐 아니냐를 놓고 시비할 만큼 순진하게 대남 심리전에 놀아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비전향 장기수를 북송하겠다면서도 정작 강제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송환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해야 할 소리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비겁한 모습이다. 바로 이런 모습이 대한민국을 허접 껍데기처럼 보이게 만드는 셋째 이유다.

대한민국이 골병 들고, 휘청거리고, 허접 껍데기처럼 보이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이 자신의 핵심가치를 잊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핵심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그 핵심가치에 대한 신념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은 없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정신 차려야 한다. 정신 차려, 대한민국!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