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곧 모필이요 천지에 널린 게 물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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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랑(一浪) 이종상(65)씨는 별명이 '25시의 사나이'다. 그의 호 그대로 파도처럼 끊임없이 출렁이며 한국화의 새 경지를 개척하는 일에 낮밤을 잊고 살았다. 육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멜빵 청바지를 즐겨입고 작업실에 묻혀 사는 그가 오랜만에 개인전을 연다. 21일부터 6월 17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는 '일랑 이종상 작품전'이다.

이번 전시는 여러 모로 뜻깊다. 일랑에게는 30여 년 그가 봉직했던 서울대 미대를 정년퇴임하며 8월에 서울대박물관에서 열 기념전에 앞서 작품들을 갈무리하는 자리고, 선화랑(대표 김창실)으로서는 20여년 만에 화랑 건물을 신축해 여는 개관전이기 때문이다.

일랑은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던 학교를 떠나 이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업작가로 다시 등단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일랑은 그가 평생을 매달려온 '원형상(源形象)' 연작 60여 점을 내놓았다. 70년대에 겸재 정선의 진경을 일구려고 전국을 떠돌던 시절부터 그는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낸 한국화 창조에 일생을 걸었고, 이 출품작들은 그 과정에서 하나씩 매듭지은 결실이다. 고구려 벽화를 연구하러 북한으로 달려가고, '독도를 문화로 지키자'며 십여 차례 섬을 찾아 그 기(氣)를 화폭에 담았다.

그는 특히 재료와 기법이 서로 조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노력해 왔다. 흔히 채색에 문제가 있어 색이 변하고 물감이 벗겨진다고 하지만 물감은 결국 흙이기에 문제는 접착제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랑이 고안한 것이 동유화(銅釉畵)다. 동판에 불로 물감을 직접 밀착시키는 무접착제 방식이다.

장지건 닥지건 그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다. 필력은 재료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이끌어가는 것이라는 젊은 날의 깨달음을 늘 잊지 않는다. "내 몸이 곧 모필이요, 천지에 널린 게 다 물감"이라는 일랑은 학교에 묻었던 세월을 딛고 다시 제2의 인생을 맞는 설렘으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02-734-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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