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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논쟁 관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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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부와 여당은 세금을 더 걷자는 것이고, 야당은 국민의 부담을 덜기 위해 세금을 깎자는 것이니 일반 국민 입장에선 야당의 주장이 솔깃할 법하다. 그러나 이 세금 공방의 내막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이면에는 재정 지출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의 씀씀이와 재원 조달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함께 가는 것이어서 어느 한쪽이 기울면 나라살림이란 수레는 주저앉고 만다.

정부가 내놓은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논란의 실체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내년에 잡은 지출 예산은 올해보다 6.5% 늘어난 221조4000억원이다. 주로 복지 예산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 재원은 세금과 각종 공과금, 벌금, 수익금 등 정부 수입으로 충당된다. 이 중에 세금(국세)은 대략 136조원으로 올해보다 7.3% 늘어났다. 그러고도 모자란 금액은 도리없이 빚을 얻어 메워야 한다. 정부는 내년에 9조원어치의 국채를 발행해 부족한 재원을 채울 작정이다. 요컨대 정부와 여당의 주장은 재정의 씀씀이를 늘리기 위해 세금도 더 걷고 빚도 지겠다는 것이다.

지출 규모를 그대로 두고 세금을 덜 걷으려면 국채 발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빚을 아주 안 갚을 생각이 아니라면 세금을 덜 걷고 국채 발행으로 돌린다고 해서 국민의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다. 다만 당장의 부담을 나중으로 미뤄놓을 뿐이다. 따라서 감세 요구는 지출을 줄이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설득력을 갖는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내년 세금을 9조원가량 깎고 정부 지출을 10조원 이상 줄이겠다고 밝혔다. 결국 여야의 세금 공방은 재정 지출 규모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 같은 입장 차는 정부의 역할과 자원 배분에 대한 이념적.철학적 차이를 반영한다. 정부와 여당은 '큰 정부'를 지향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큰 정부'는 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잘하기 위해선 정부의 역할을 확대하고 정부의 씀씀이도 늘리자는 것이다. '작은 정부'는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정부가 간여하는 몫을 줄이고 예산도 적게 쓰자는 것이다. 여기서 관전의 포인트는 양쪽이 내세우는 '국민'이 다르다는 것이다. 큰 정부에서의 국민은 주로 세금은 내지 않으면서 정부의 지원과 서비스를 많이 받는 저소득층이다. 이들은 감세 주장이 달갑지 않다. 낼 세금이 없으니 세금을 깎는다고 해서 덕 볼 것도 없다. 대신 정부 지출이 줄면 복지 혜택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에 국민 부담을 덜자는 쪽에서 말하는 국민은 실제로 세금을 내는 중산층 이상을 지칭한다. 이들은 세금에 민감하고 당연히 세 부담이 느는 데 거부감을 가진다.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 가운데 절반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이 거의 모든 세금 부담을 짊어진다. 감세론자들은 이들의 세 부담을 덜어줘야 경기도 살고 성장 잠재력도 확충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감세 논쟁은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계층과 더 걷은 세금으로 혜택을 보는 계층의 이해가 엇갈리는 데서 비롯된다. 이해찬 총리는 "감세는 중산층의 세금만 줄이고 (그 결과) 대국민 서비스 재원의 축소를 불러온다"고 말했다. 여당의 대변인은 "(감세 정책은) 특권 부유층을 위한 서민복지 축소 정책"이라고 감세 정책을 비난했다. 이들은 감세 논쟁의 본질이 소득계층 간 분배의 문제임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셈이다.

이번 예산 심의에서 여야는 '큰 정부'와 '작은 정부', 저소득층 지원 확대와 중산층의 부담 경감 가운데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그 결과를 눈을 부라리고 지켜볼 것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