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국감 '불호령'에 희망이 날아갈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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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한성은 원래 공기업으로 출발했다. 1996년 판교 공장을 주택사업용으로 쓰기 위해 외자를 끌어다 충남 아산으로 옮긴 것이 화를 불렀다. 자금 사정이 빠듯해졌다. 철석같이 믿었던 정부마저 외환위기 와중에 돈줄을 끊어 부도가 났다.

하지만 수원지방법원은 99년 10월 이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판교 땅 3만 평 등에 주택사업이 추진되면 회생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이 회사 정해기 이사는 "판교 땅은 부도의 아픔을 견디게 해준 '희망의 땅'이었다"고 말했다.

판교 부지는 성남시의 개발예정용지 지정으로 한동안 묶여있다가 2001년 12월 지정된 택지개발예정지구에 편입됐다. 회사 단독으로 주택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렵게 됐다. 보상금도 예상보다 적은 662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수의계약으로 택지를 주겠다는 토지공사의 약속만 믿고 협의양도에 순순히 응했다. 박찬환 대표이사 사장은 "토공이 처음부터 택지를 안 준다고 했다면 수용재결을 통해 보상금을 800억원 넘게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약속은 지켜지는 듯했다. 지난해 6월 이 회사는 판교 택지 공급 대상자로 선정됐다. 올 5월에는 건설교통부에서 택지 공급 승인이 떨어졌고, 토공도 판교 지구 내 A20-2블록을 배정했다. 그러나 '8.31 부동산대책'을 전후로 이 회사는 공장 부지를 주택사업용 토지로 둔갑시켜 '꿩(보상금) 먹고 알(택지) 먹는' 재주를 부린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렸다.

정 이사는 "원래 부지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1만 평을 보상금의 두 배가 넘는 1400여억원에 매입해야 하는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며 답답해 했다.

이 회사가 택지를 받더라도 돈방석에 앉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8.31 대책으로 판교 신도시의 분양가는 땅값에 건축비 등을 더한 가격으로 통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회사가 판교 사업에 매달리는 것은 부도 이후 떨어진 직원 사기와 회사 위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박 사장은 "공기업을 부도낸 책임이 있는 정부가 회생 의지마저 꺾는다면 지나친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회사 관계자들도 "국감에서 국회의원의 의혹 제기가 이같이 큰 파장을 낳을 줄 몰랐다"고 말한다. 이같이 특혜 시비가 일자 사업시행자인 토공은 건교부를 통해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토공 관계자는 "의혹이 제기된 이상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유권해석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교부는 ▶처음부터 주택사업용으로 매입했는지 ▶건축이 가능한 땅이었는지 ▶주택사업계획이 구체적으로 있었고 실제 추진됐는지 등이 논란의 초점이라고 밝혔다. 건교부 관계자는 "법적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이 나오더라도 현행법 규정은 '할 수 있다'는 것이므로 꼭 공급할 이유는 없다. 이해관계자와 내부의 의견을 종합해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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