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열기와 생명력 넘쳐|김기창 화백의 『세계풍물작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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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운보 김기창 화백의 「세계풍물작품전」(14∼30일)이 6회 중앙미술대전의 특별초대로 열리고 있다. 지난해의 대상수상작가 초대전에 이은 새로운 기획이다.
운보는 50년대부터 몇 차례에 걸친 이국풍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번 초대전의 내용은 81년6월10일부터 8월14일까지 76일 동안 18개국을 도는, 이수로 무려 30만리의 역정을 통해 기록한 이국풍물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개 스케치라면 가벼운 그림으로 보아 넘기는 경향이 있고, 또 다른 나라 풍물스케치라는 유형의 전시물이 그런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운보의 이번 풍물화전은 스케치라는 개념으로 지나칠 수 없는, 그의 예술적 면모를 어느 부분 가장 진하게 드러내놓고 있음을 간파할 수 없을 것 같다.
총 2백여 점에 달하는 스케치 중에서 추려낸 54점의 작품들은 현장에서의 즉흥적 속사에서부터, 그러한 현장메모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작품으로 의도된 것에 이르기까지, 한 작가의 시각과 그것을 재구성의 조형JR 추이로 이끌어나가는 과정을 실감 있게 전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이면서 동시에 기록이란 단순한 현장성을 넘어나는 관념적 재구성의 성격이 어쩌면 그의 독자적인 화풍의 맥락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있음이 아닌가 보인다.
어쨌거나 고희를 맞는 노화가의 지칠 줄 모르는 창조의 열기는 작품마다에 진하게 배어있어, 단단히 고삐를 잡고 재촉하는 창작의 숨가쁜 채찍을 하나의 교훈으로도 만나게 한다.
세계 여러 곳의 풍경과 인간의 삵의 공간이 엮어내는 풍부한 내용과 그것을 간결하고도 힘찬 터치로 재구성해준 화면은, 그의 오랜 예술적 체험을 집약시킨 것으로서 한결 의미를 더해줌이 분명하다.
보는 즐거움과 생각하는 즐거움이 공존하는 화면은 우리들의 무거운 일상에 한 모금 청량제구실을 다하고 있음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힘으로 표상 되는 활달한 터치와 생명력으로 충일 되는 강인한 구성은 박진하는 생동감으로 우리를 부단히 압도해 버리기 때문이다.
오광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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