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칼럼] 백세시대, 은총일까 재앙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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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선임기자

백세시대가 열렸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였지만 어느새 현실이다. 오래 살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져야 한다. 앞 세대와는 다른 생애설계가 필요하다. 앞 세대를 언제까지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굳이 나눈다면 산업화가 본격화하지 않았던 1950년대 이전의 기성세대라고 보면 된다. 이들은 현업과 은퇴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 현업에서 물어나 10년쯤 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갑잔치의 의미가 컸다. 장수의 징표였다.

이제는 환갑잔치했다는 말을 듣기 어렵다. 특별히 의미를 둘 이유가 없어지면서다. 칠순잔치도 그다지 장수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어렵다. 이렇게 급속도로 고령화하고 있지만 그 속도를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미 백세시대에 살고 있어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90세 장수는 이미 드문 일이 아니다. 한국인의 최빈사망연령도 80~85세 사이를 오갈 정도로 높아지고 있다.

최빈사망연령은 특정 연도에 사망한 사람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사망하는 연령을 의미한다. 이 정도가 되지 않으면 상갓집에서 호상이라는 말도 쓰기 어렵다. 최빈사망연령이 90세를 넘어가면 100세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가 된다.

백세시대는 인간의 생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노후생활이다. 일하는 기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노후가 길어지면서 오히려 새로운 짐을 지게 됐다는 얘기다. 정년을 60세로 연장해도 90세까지 살려면 30년이란 세월을 보내야 한다. 정년이 없다는 자영업도 60세를 넘겨서 계속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직면하게 되는 백세시대는 은총과 재앙이 함께하는 믹스트 블레싱(mixed blessing)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는 은총이 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은총이 되려면 백세시대에 맞춰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하기도 전에 백세시대가 우리 사회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그 충격을 제대로 짚어보고 어떤 대비가 필요한지를 본격적으로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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