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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새 100여 팀 선수들 "집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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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전 배구팀 선수는 전원이 30대다. 오랫동안 선수가 충원되지 않았다. 36세의 최고령 선수 심연섭(위)이 레프트 주공격수를 맡아야 한다. [중앙포토]

지난달 28일 국회 문광위의 대한체육회 국정감사에 이례적으로 스포츠팀 감독 한 사람이 증인으로 나왔다. 한국전력 럭비팀의 송노일(46) 감독이다. 송 감독은 여야 의원들에게 "비인기종목 스포츠팀들이 다 죽어갑니다.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사정이 얼마나 절박하기에 송 감독이 이렇게 절규했을까.

한국전력 럭비팀은 올해 열린 다섯 차례의 대회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선수가 부족하지만 회사가 충원해 주지 않아서다. 한국철도 축구선수들은 요즘 마음이 뒤숭숭하다. 모기업인 철도공사가 경비 감축 차원에서 축구단 해체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불황이 길어지면서 상당수 실업 스포츠팀이 해체됐거나 해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2003년 5월 광주시청 여자핸드볼팀이 해체된 것을 비롯, ▶동원드림스 아이스하키팀(7월)▶현대백화점 탁구팀(10월)▶서울시청 축구.배구팀(11월) 등이 줄줄이 간판을 내렸다. 올 6월엔 포스데이타 탁구팀이 문을 닫았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2003년 한 해에만 36개의 일반팀(초.중.고.대학 팀 제외)이 해체됐다. 체육회 관계자는 "2004년과 올해 상반기의 경우 최종 집계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 기간에만 줄잡아 70여 개 팀이 해체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반 기업뿐 아니다. 정부투자기관이나 공공기관도 거액의 흑자를 내면서도 사기업의 구조조정 바람에 편승해 스포츠팀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실업팀의 해체는 곧바로 학원 스포츠에 영향을 준다. 졸업을 하고 취업할 곳이 줄어들면 학원 선수들의 수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국내 아마추어 스포츠의 붕괴를 우려하는 부분이다. 야구.축구.농구 등 프로팀이 있는 종목은 그래도 낫다. 하지만 아마추어 종목들은 고사 상태에 빠진다. 올림픽에서 한국의 메달밭은 야구.축구.농구가 아니다.

◆ 공기업 실태=한전 럭비팀의 경우 회사에선 인력 충원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다. 보통 30명 정도의 선수가 있어야 팀을 꾸릴 수 있지만 이 팀은 15명의 선수만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46세의 코치도 경기에 나가야 한다. 선수들의 평균 나이도 30대 후반이다. 한전 배구팀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원은 15명이지만 선수는 11명뿐이다. 절반씩 나눠 자체 연습경기를 하기도 부족하다. 최고령인 심연섭(36) 선수가 주공격수를 맡고, 차승훈(36) 코치와 김철수(37) 트레이너까지 경기에 투입되기 일쑤다. 1990년대 초 김재룡(현 코치), 백승도(남자 5000m 한국기록 보유) 등을 보유해 국내 최강 실업팀으로 군림하던 한전 육상팀도 15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

오성식 한전 업무지원팀장은 "선수 충원을 계속 하고 있으며, 팀을 해체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럭비팀이 대회에 불참한 것에 대해서는 "10월 전국체전에 대비하기 위해 선수 보호 차원에서였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대한체육회는 한전이 스포츠팀의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본다.

한국철도 축구단도 '바람 앞의 등불' 이다. 올해 초 철도청에서 철도공사로 회사명이 바뀔 때까지만 해도 회사는 스포츠팀 활성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6월 정치인 출신 이철 사장이 취임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맹주환 홍보실 언론홍보팀장은 "사장의 지시에 따라 축구팀 존속에 대해 검토 중이다. 여의치 않다면 해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외면 당하는 국민체육진흥법=제10조 4항에 따르면 정부투자기관과 1000인 이상 상시 고용하는 공공기관 및 지자체는 1종목 이상의 운동경기부를 설치.운영하고, 경기 지도자를 두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98개 공기업과 지자체 등이 해당된다. 그러나 실제 팀을 운영하는 곳은 76개 기관(77.5%)으로 조사됐다. 팀을 운영하는 기관도 대부분 선수 몇 명만 둔 초미니 팀으로 '무늬만 운동부'인 상태다. 대표적 기업이 조폐공사와 철도공사. 육상과 역도팀을 운영하고 있는 조폐공사는 육상이 선수 두 명, 역도가 네 명인 초미니 팀. 한국철도 유도팀도 선수가 두 명뿐이고, 수자원공사 육상팀도 세 명에 불과하다. 대한체육회 백성일 공보실장은 "대상 기업의 상당수가 팀을 운영하지 않을 뿐 아니라, 팀을 운영하는 곳도 면피용 생색내기인 경우가 다반사여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신동재.이충형 기자

"공기업 팀 운영비 손비 인정을"
김정길 대한체육회장

공기업을 포함한 실업팀 운동부의 잇따른 해체는 국내 아마추어 스포츠의 고사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스포츠를 총괄하는 대한체육회의 대책은 무엇일까. 김정길(사진) 대한체육회장을 만나 원인과 대책을 알아봤다.

-잇따른 실업팀의 해체와 공기업의 운동팀 방치는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나.

"과거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엔 대통령이 한마디하면 기업들이 알아서 팀도 육성하고 선수들 지원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지요. 국민체육진흥법에 공기업이 팀을 운영하도록 돼 있지만 불이행시 강제 규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강제 조항을 만들 분위기도 아니고요. 기업주들이 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스포츠를 통해 우리 국민이 얼마나 울고 웃습니까. 국민 '삶의 질' 향상에 스포츠가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헤아려 주었으면 합니다. 특히 공기업 사장들이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제도적으로 고칠 점은 없나.

"운동팀 운영에 드는 비용에 대해서는 손비처리하는 등 세제 혜택을 줘야 합니다. 한준호 한전 사장이 지적한 대로 공공기관의 경우 기관평가시 스포츠팀 운영비를 지금처럼 손실로 계산한다면 공기업이 스포츠팀 운영에 적극 나서기가 어렵게 돼 있습니다. 적어도 적자는 되지 않도록 해줘야 합니다."

-대한체육회 차원의 대책은 없는가.

"기업들이 팀을 운영하면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관련 법규를 고치는 데 대한체육회가 앞장서겠습니다. 아울러 기업들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로 스포츠팀을 육성하도록 적극 권장하겠습니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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