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3>제79화 육사 졸업생들(156)장창국-혁명주체간 불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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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혁명 10일만에 최고회의에서 첫 소동이 벌어졌다.
5월 16일 발동했던 비상계엄령을 장도영 의장의 독자적 판단에 의해 27일 경비계엄으로 바꾼데 대한 최고 회의안의 내분이었다.
그러니까 장도영씨의 실각의 싹은 이때부터 트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미국쪽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던 장 의장은 미국의 신임도 회복하고 앞으로 혁명과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키 위해서 이 정도면 비상계엄을 해제해도 되리라는 독자적인 판단을 했던 것이다.
8기생 최고 위원들은 긴급 소집된 최고회의에서 비상계엄에서 경비계엄으로 바꾼 경위를 추궁했다.
8기생 강경파 최고 의원들은 『혁명은 누가 했는데 생색은 누가 내려고 드는 것이냐. 이게 뭐냐. 혁명 다 망친다』며 소리를 지르며 책상까지 치는 소동이 났다.
당시 최고회의에는 중령에서 중장까지 있었으나 일단 회의장에 들어가면 계급·서열과는 달리 모두 1대 1로서 발언이나 의결에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후에(6월 10일)공포된 최고회의법에는 일반 관례와는 정반대로 의장·부의장의 유고시에는 최연소 위원이 의강직을 대행한다는 규정이 명시될 정도였다.
당시 법무분과 위원장을 맡았던 이석제 중령은 이 배경을 『일부 장성들이 영관급 최고위원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할까하여 이를 막기위해 최연소 승계 조항을 넣었다』고 밝혔었다.
이때만 해도 저마다 권총을 차고 있는 때라 회의 분위기가 거칠어지면 어떤 위기의식까지 고조됐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모르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 때 장 의장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건 내가 결정했다. 당신들이 언제는 나더러 모든걸 알아서 하라고하지 않았느냐. 모든게  온한데 뭐가 문제란 말이냐』고 호통을 쳤다.
결국 이미 선포된 경계계엄은 어쩔 수가 없어 그대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때부터 혁명주체들은 장 의장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 같다.
그 이전까지는 혁명의 성공여부가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장 의장의 참모총장직을 혁명에 이용했으나 일단 사태가 성공으로 굳어진 마당이고 혁명에 미온적이었던 장 의장을 더 이상 총수로 앉힐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소장파 주체들 사이에서는 『장도영이 노는 것 보니까 안되겠군』하는 말이 자기들끼리 오갔다는 얘기도 있다.
애당초 장도영 의장은 최고회의에 소극적이었다.
매일 열리는 최고회의에 가끔 나올 뿐이었고 회의는 부의장인 박정희 소장이 거의 도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토론도 있었지만 회의의 결론은 항상 박 부의장이 처음 의도했던 대로 맺어지곤하는 과정에서 혁명세력간에 균열이 생겨났다.
5기생 최고 위원들은 김종비씨를 중심으로 한 8기생들이 박 소장을 업고 최고회의를 자기들 뜻대로 끌고 가려 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구나 김종필씨가 박 소장을 앞세워 최고회의 뿐 아니라 정부 각 기관에 까지 손을 뻗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대한 불만이 컸다.
혁명후부터 줄곧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무대 뒤에서 영향력만 행사하던 김종강씨가 6월 3일 공식으로 표면으로 부상했다.
그는 미국 기자와 만나 혁명의 후일담과 구상을 털어놓았고 이틀 뒤인 5일에는 기자 회견을 했다.
물론 사전에 박 부의장과는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이자리를 통해서 『원래 우리는 45세 이하의 청장년만을 정치에 참여케 하는 임시헌법을 기초했었으나 사정상 보류하고 있다』 『군사혁명위원회의 포고령이나 최고회의 기구 등은 내가 기초해서 박 부의장의 승인을 받은 것』이라는 등 당시 베일에 싸였던 혁명 내부에 관한 얘기를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거기다가 그는 최고회의에 참여치 않은 자신의 의도도 밝혔다.
『나는 최고위원이 되기보다는 최고회의 뒤에서 중앙정보부장으로 일하려고 했을 뿐이다. 최고위원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당시 서슬이 퍼렇다고 여겼던 최고회의를 한마디로 깎아 내리는 발언이었다.
김종필씨의 부상과 길재호·김형욱 중령 및 오치성 대령 등 8기생의 독주에 박치옥·문재준 대령, 송찬호 준장 등 5기생들의 불만은 점점 더 커졌다.
5기생들의 가슴속에는 『혁명을 결정적으로 성공시킨 것은 우리가 부대를 끌고 나왔기 때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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