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 광고로 보는세상] 최악의 광고모델 '비디오 뱀파이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모델의 사생활 때문에 회사나 제품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급기야 광고를 중단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누구누구가 모델비 반환 소송을 당했다는 기사도 자주 눈에 띈다. 광고에 유명인이 모델로 등장하기 시작한 지 백여 년 된 것 같다. 유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광고 모델이 되기 위해 연예인이 될 정도로 이제 광고에서 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또 광고 모델로 유명해져서 톱스타가 된 경우도 이제는 흔하다.

그러나 모델을 적절하게 사용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다. 모델과 제품과의 합당한 연관성(relevance)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모델도 사람인 이상 실수도 하고 또 유명해지기 전의 전력에 대해서는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고기 소비 촉진 광고에 나온 유명한 여자 모델이 광고에서는 "전 소고기 안 먹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라고 했다가 다른 인터뷰 자리에서는 "제 아름다움의 비결은 고기를 안 먹는 거랍니다"라고 재잘거리는 식이다. 세제 용기 사진에 등장한 건강한 젊은 주부가 나중에 세계적인 포르노 스타가 되는 바람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용기 디자인을 새로 한 회사도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런 모델 중에서 모델 자체가 너무나 훌륭해 오히려 제품에 피해를 주는 부류가 있다. 말하자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너무 섹시하고 아름다워 모든 사람이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정신없이 쳐다보는 경우라 하겠는데, 이들을 '비디오 뱀파이어(video vampire)'라고 부른다. 제품에 쏠려야 할 시청자의 주의를 흡혈귀처럼 빨아들인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리라.

광고 역사상 유명한 비디오 뱀파이어는 엘러너 루스벨트(1884~1962.사진)여사다. 루스벨트 여사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내로서 대중적인 인기가 대단했으며 남편이 죽은 후 유엔 대사를 역임하기도 하는 등 사회 활동도 매우 활발한 저명 인사였다. 이 여자가 굿럭 마가린 광고에 등장해 "새로 나온 굿럭 마가린, 정말 맛있어요"라고 했을 때 미국 전체가 시끄러웠다. 저렇게 훌륭한 분이 마가린 광고에 나오다니 세상이 어떻게 된 거야. 저렇게 훌륭한 분도 돈만 주면 광고에 나오는구나. 그러나 누구도 광고하는 제품은 기억하지 못했다.

회사에 따라서는 이렇게 머리 아픈 모델 대신 캐릭터를 개발해 사용하기도 한다. 캐릭터는 모델과 달리 술도 먹지 않고 스캔들도 일으키지 않으며 약물 중독자도 아니다. 더 좋은 것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비디오 뱀파이어들이 광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투기를 하고 탈세를 하고 사기를 치고 술 먹고 추태를 부리는 정치인들도 민심을 한 표 한 표 빨아먹는 뱀파이어들인 것이다. 이러다간 미키마우스나 도널드덕이 정치를 하는 날이 오지나 않을지.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summerdog@grapecomm.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