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 성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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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교생 출입은 어떻게 막겠다는 걸까…
서울환도 직전인지 직후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앓는 어느날, 합동 통신외신부의 말석에서 일하던 나의 상사인, 지금은 고인이 된 심연섭 당시 부장은 예나 다름없이 점심에 곁들여 마신 소주 한병에 지나치게 취해있었다.
그가 옥상에 올라가서 취기를 식히고 있는뎨 앞뒤로 경호차도 요란한 행렬이 지나갔다.
당시의 합동통신은 을지로입구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분은 그게 이승만 대통령의 행차인지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식들아!』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함을 질렀다.

< 스트레스는 풀어야 >
내게는 그게 「식들아」로 들렸지만 아래 길가를 지키고 있던 사복 형사들에게는 「자식들아」로 들렸나보다.
심연섭씨의 고함소리가 미처 가시기도 전에 그는 달려 올라온 사복들에 의해 어디론가 잡혀갔다.
짐작 같아서는 그는 「자식들아」라고 고함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취중이라도 차마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하겠고, 그래도 뭔가 소리를 지르고싶어 그냥 「식들아」라고 외쳤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잔뜩 취해 있었고, 또 「자식들아」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다행히 매하나 맞지 않고 하룻만에 풀려 나왔다.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얘기다.
다음날 그를 위한 외신부의 환영(?) 소주파티에서 그는 『숨통을 트기위해서였다』며 호걸 웃음을 지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숨통이 터질 것만같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어 오를때가 있다.
이게 쌓이면 곧 스트레스가 쌓이고 변이 생긴다.
이런 스트레스의 해소에는 고함지르는것도 좋은방법이라면서 아침에 이를 닦을때 고함을여러번 질러보라고 미국의 어느 정신과가 권했다는 얘기도 있다.
숨통이 터질것만 같은 세상이다.
어디를 둘러보나 울화가 치밀어 오지 않는 일이 없다.
이런때는 곤드레가 되도록 술에 취해 모든 것을 잠시나마 잊어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평소에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의 머리를 연상해가며 골프공을 후려치면 마음속이 후련해진다고 말하는 골퍼드있다.
성인들의 숨통을 트개 만들어주는 것은 이렇게 많다.
미성년자에게는 마땅한 기분 풀이감이 없다.
어른들이 미성년자들을 보고 입버릇처럼 『공부나 해라』고 이르는 것도 그래서 인지도 모른다.
이런 뜻에서도 당국이 유흥업소 출입 제한 연령을 지금까지의 20세 미만에서 18세미만으로 내리겠다는 것은 어쩔수 없는 결정 같기도 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왜 하필이면 대구 디스코 클럽에서 25명의 남녀 고교생들이 불에 타죽은 직후에 서둘러 내리려는지가 마음에 걸린다.
한 당국자는 식품위생법상의 유흥업소 출입제한 연령을 18세미만으로 한 것은 『18세미만의 근로 청소년들이 유흥업소에 드나드는 것을 업주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여 막을수 있도록 근거규정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유흥업소업주가 18세미만의 고교생출입을 막지못한 것은 출입제한 연령이 20세미만으로 되어왔기 때문이며, 18세이상의 미성년자들에 대한 단속은 잘 되어왔다는 얘기인가?

< 여태까진 잘돼왔나 >
당국과 미성년과의 문답을 한번 상상해본다.
「디스코 클럽에 가서는 안된다」『왜 가서는 안됩니까?』
『유홍업소에 미성년이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지된 것은 모두 나쁘다고 할 수 있나요?』
『금지된 것을 어기면 벌을 받게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유흥업소 출입 그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법이 금하고 있기 때문에 나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법의 눈을 숨기거나 지금까지처럼 법이 살짝 눈감아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법은 어디까지나 엄정·존엄한것이며…』
『그럼 왜 호텔의 디스코클럽은 새벽까지 영업을 할수 있게 했습니까! 그 손님들이 거의 내국인들이며 대부분이 미성년자들이라는걸 모르셨나요?』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한 끝에 출입제한을 18세미만으로 내리기로 한 것이다. 18세라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른이나 다름없다. 남자18세라면 부모 승인없이도 결혼할수가 있고 어엿한 공무원이 될 수도 있고 택시운전사가 될 수도 있다. 1년후면 군인도 되는 나이다. 술인들 못마실게 없지 않겠느냐』
『그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옛날에도 최치원이 대과찰제한 것은 척세. 이도령이 어사가 된것도 17세때였다고 춘향전에는 적혀있습니다. 경국대전에도 15세이하는 강도·살인범이 아니면 수배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니까 16세미만을 미성년으로 삼았다고 국사선생님도 일러주시더군요』
『그렇다. 18세로 내리는것도 유흥성년을 현실화시키자는 것이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 단속대상을 18세로 내리면 그만큼 단속의 번거로움이 즐어들고, 통계상으로도 청소년 범죄율이 낮아진다는 것을 노린게 아닙니까? 그건 대구디스코홀 화재사건직후에 영업시간을 밤 12시로 제한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발상이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 18세부터는 술집 출입을 허가하고있는 선진국들의 예를 따르려한 것이다』
『그렇다면 선진국을 본떠서 18세 이상에게 선거권까지도 부여해서 민법상·헌법상으로도어엿한 성인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술을 마신다고 어른이 되는건 아니지만 온갖 유혹이 깔려있는 유흥업소에 마음놓고 드나들고, 마음놓고 숨을 마시면서도 탈선하지 않을 만한 자제력이 있다면 모든면에서 어엿한 독립적인 인격자 대접을 받아얄게 아닙니까? 또 하나 여쭐게 있습니다. 미국의 여려 주에서는 술집 출입 자격을 18세에서 거꾸로 20세로 올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법으로 유흥성년의 나이만 18세로 내린다는 것은 어제까지의 미성년이 저지르는 탈선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얘기와 다를게 어디 있습니까?』

< 진정한 자제력 중요 >
『유흥연령을 내려주면 제일 고마와해야 하는게 자네가 아닌가.』
『저는 만 18세의 고교 3년생입니다. 이런 유흥성년이 저의 반에는 많습니다. 그래 벌써부터 살판났다고 야단들 입니다』
『고등학생은 안된다.』
『왜 학생은 안됩니까?』
『배우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린 숨통을 어떻게 터뜨려야 하나요? 또 우린 학생입니다고 일부러 신분을 밝히고 술집에 들어가는 바보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법은 지켜야한다.』
『그럼 꼭 한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당국님께서는 정말로 만 18세면 누구나 활개펴며 어느 유흥업소에 드나들어도 된다고 확신하십니까? 그만큼 우리네사회의 풍기며 윤리며 가정교육이 단단하다고 낙관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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