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 인적 쇄신, 더 미뤄선 안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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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호 02면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항명 사태로 인해 신년 벽두부터 박근혜 정부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 측근의 돌발행동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칫 현 정부의 통치 능력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불러온다.

 김 수석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 출석을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로서 긴급을 요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부한 건 궤변이자 국민을 무시한 처사다. 더욱이 상사인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까지 거슬러 사표를 낸 것 역시 통치 행위의 정점인 청와대에서 있을 수 없는 전대미문의 항명이자 하극상이다.

 청와대의 대응도 문제다. 청와대를 하루아침에 ‘콩가루 집안’으로 만든 당사자에 대해 규정상 해임을 할 수 없다며 사표를 수리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도려내기보다 그저 어물쩍 넘어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김 실장과 김 수석의 불화설 등 막장 드라마에 가까운 루머가 쏟아지고 있는데도 청와대는 묵묵부답이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문서 유출 혐의를 놓고 벌인 집안싸움에 이어 항명 사태까지 겹치면서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갑다. “청와대의 기강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나”라는 한탄은 물론 권력 핵심부에서 통치 불능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나 홀로 행보를 보이며 정권을 혼란에 빠트리는 것은 청와대 참모진의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미 진영 전 복지부 장관과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등 각료급 인사들이 항명성 언행을 하면서 정권의 리더십은 금이 간 상태다.

 청와대는 이제 더 이상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미뤄선 안 된다. 저성장의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제 운용은 물론 규제 완화와 공무원연금 개혁 등 산적한 국정 현안에 대한 해결이 시급한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를 실천할 마지막 ‘골든 타임’인 올 한 해 동안 정권 내부의 분열과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물론 청와대 입장에선 이 모든 것이 정치 공세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정치 공세의 소재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는 권력 내부의 책임이 무엇보다 엄중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논란의 당사자가 된 마당에 박 대통령은 쇄신으로 정면돌파를 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식의 ‘유체이탈식’ 화법으로 우회하려 해선 안 된다. 인적 쇄신의 시작은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끔 ‘수첩 인사’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인물을 과감하게 기용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김기춘 실장은 지난 2일 비서실 시무식에서 기강 확립을 다짐하며 ‘파부침주(破釜沈舟)’를 언급한 바 있다. 이제 그 솥을 깨뜨려야 할 때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입으로 결연한 각오를 듣고 싶어 한다. 12일의 신년 기자회견이 바로 그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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