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파문 겹친 청와대, 대통령이 실타래 직접 풀어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09호 08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월 6일 취임 후 첫 신년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불출석 사유서.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이틀 앞둔 10일, 청와대는 어수선했다. 급작스레 터진 김영한 민정수석 항명 사태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전 김 수석의 사표를 수리하고 면직 처리했다. 김 수석이 정무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일반직 공무원의 파면·해임 등의 절차를 밟지 않고 곧바로 면직 처리됐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건 유출 사태를) 가까스로 수습하고 전기를 마련하려 했는데, 왜 하필 굳이 이때…”라며 답답함을 표했다. 항명 파문으로 인해 대통령 기자회견에까지 불똥이 튀는 건 아닌지 촉각을 세웠다.

내일 박 대통령 신년 회견, 정치 전문가들의 조언

 새정치민주연합은 10일 파상공세를 이어갔다. 2·8 전당대회를 앞둔 터라 당권에 도전하는 3명의 후보는 더욱 날을 세웠다. 문재인 의원은 “지금 청와대에는 위아래도 없고, 공선사후(公先私後)의 기본 개념도 없다. 국가의 기강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이인영 의원은 “김영한 사표 수리는 미봉책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포함해 청와대 전원 사퇴해야 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집권 3년차 향방, 3가지 시나리오
당초 청와대는 신년 기자회견의 주요한 틀로 ‘각종 논란에 대한 선(先) 유감 표명, 후(後) 새로운 국정 어젠다 제시’로 잡고 있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발표가 있었지만, 청와대 안에서 비롯된 일이니 만큼 대통령이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로서 직접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을 깔끔하게 일단락 짓자는 기조였다. 이후 강력한 의제를 새롭게 제기해 집권 3년차를 힘차게 열 요량이었다.

 하지만 돌발적인 항명 파문으로 스텝이 엉켜버리고 말았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문건 유출에 공직기강 문란까지 더해지며 이제 청와대 인적 쇄신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정치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 무엇을 담고 어떤 기조를 유지할지에 대해 크게 세 가지의 시나리오를 예상했다.

 첫 번째는 기존 방식의 고수다. “개인 한 명 때문에 국정 운영 기조가 흔들려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에도 대통령은 인사 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셌으나 “이벤트성 개각은 해서는 안 된다”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불통 논란에 대해서도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소통의 의미라면, 그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두 번째는 일종의 타협안이다. 문건 유출과 항명 파문에 대해 강하게 유감을 표시하되 실제적인 인사 교체로는 이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방점은 ‘공직 기강 바로잡기’에 찍히게 된다. 청와대뿐 아니라 정부 전 부처로까지 확대시켜 총리실 산하 인사혁신처에 더욱 강력한 권한을 부여할 수도 있다. 특정인을 거론하기보다 ‘관(官)피아’ 척결로 상징되는 관료사회 시스템의 개혁으로 환치시키는 방안이다.

 마지막은 극약 처방이다. 인적 쇄신을 뛰어넘어 민정수석실 통폐합 등 전면적인 청와대 구조개편을 단행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비서실장의 교체로까지 이어가는 구도다. 문제는 이 경우에도 교체 대상을 어디까지 하느냐다. 떠밀리는 모양새로 인사를 단행하는 데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과연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하지만 40%를 밑도는 지지율의 하락세를 인정할 경우 한가한 대처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항명 파문은 오히려 비서실장의 힘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청와대 개편은 정치의 영역이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정치와 거리를 두는 듯한 행보에서 벗어나 정치 정상화를 새삼 국정 화두로 삼아야 한다. 청와대 인사 교체에 대한 입장 표명이 빠진다면, 신년 기자회견은 ‘앙꼬 빠진 찐빵’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버지는 18년간 국정을 운영하며 누구보다 경험이 풍부했다. 당시는 세상도 단순했고, 청와대도 막강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며 “현 청와대는 관리 기능을 할 뿐 정책 실행 능력은 사실상 부재한 상태다. 이참에 뛰어난 정책 참모를 대거 중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통령은 과거 위기 때마다 자신을 던지는 과감성으로 문제를 정면 돌파해 내곤 했다. 이번에도 반전 카드로 국면을 전환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남북관계 개선 의지 강력히 피력해야”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경제와 통일이 핵심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형준 교수는 “역대 대통령의 집권 3년차를 돌이켜보면 한결같이 남북관계 개선을 주요 의제로 들고 나왔다”며 “더 이상 미뤘다간 자신의 임기 내에 별다른 업적을 내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때마침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최고위급 회담을 못할 이유가 없다”며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상황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어느 때보다 강하게 피력할 때”라고 주문했다. 다만 각론에 들어가선 “단박에 5·24 조치 해제까지 내놓게 되면 너무 빗장을 풀어놓게 된다”며 “금강산 관광 재개 정도에서 포용책을 제시하는 게 현 시점에서 적절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제안했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는 “기자회견 메시지에 강력한 한 방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드라마 ‘미생’의 폭발적 인기에서 볼 수 있듯이 비정규직 문제가 젊은 층을 너무 억누르고 있다”며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대통령이 해결할 수 있는 복안을 제시한다면 어느 때보다 호소력이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식 파괴를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대통령학연구소 부소장인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그동안의 기자회견이 너무 틀에 박혀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인상이 강하다”고 전제했다. 미국처럼 날 선 공방이 이어질 정도로 파격적인 형식까지 주문하긴 힘들어도, 민감한 이슈가 과감하게 다뤄져야 국민적 관심이 더 높아진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논란은 됐지만 지난해에도 ‘통일은 대박’이란 발언 덕에 통일 이슈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나. 결국은 말이다. 귀에 쏙 박히는 함축적 언어로 국정 운영의 원동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12일 오전 10시부터 청와대 춘추관에서 약 1시간30분간 진행된다. 15분 정도 신년 구상을 발표한 뒤 기자 10∼15명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 될 전망이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