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거짓’ SNS로 확산 … 언론서 다루면 ‘진짜’ 처럼 둔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09호 15면

임세령 대상 식품사업총괄부문 상무와 배우 이정재의 열애 소식이 새해 첫날 전해졌을 때 세간의 이목을 끈 건 지난 몇 년 동안 루머로 떠돌던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아니었다. 바로 파파라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임 상무의 패션이었다. 대기업 오너의 딸인 만큼 최고급 브랜드를 입었을 거라는 예상을 누구나 하던 차에 한 네티즌이 임 상무가 걸치고 있던 패션 품목의 브랜드와 가격을 세세하게 공개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평소 알기 어려웠던 재벌가의 소비 행태를 엿보는 재미에다, 수천만원대의 코트와 가방 등 사진에 찍힌 날 걸친 패션의 가격만 합해도 웬만한 서민의 전셋값에 맞먹는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자극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순식간에 이 정보가 퍼졌고, 보도전문채널인 YTN을 비롯해 채널A 등 일부 종편과 거의 모든 인터넷 언론이 앞다퉈 이 ‘사실’을 전했다. 시청자와 독자는 당연히 이를 진짜 정보로 받아들였다.

‘임세령 패션’ 헛소문 생산과 확산 과정

에르메스 핸드백 등 일반인도 잘 아는 초고가 브랜드가 섞여 있어 다른 브랜드에 대한 정보도 진실이라고 믿기 쉽지만 사실 이 정보는 대부분 거짓이었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파파라치 컷 브랜드 설명에 등장하는 ‘힐피거X브라운토닉’이라든지 ‘에크니시’라는 브랜드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온라인상에 떠돌고 있는 네 컷의 파파라치 컷에 재킷(코트)과 핸드백, 구두에 대한 각각의 상세한 브랜드 정보와 가격이 나오지만 이 가운데 맞는 정보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쇼핑의 기술』의 저자 이선배씨는 “원래 이런 뉴스에 큰 관심이 없는데 하루 종일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주요 기사로 떠있길래 한번 클릭해봤다가 깜짝 놀랐다”며 “발렌티노 코트를 ‘릴리 마들레디나’라는 식으로 아예 존재하지 않는 브랜드로 포장하거나 생로랑 핸드백을 에르메스라고 설명했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수백만원대 가방을 수천만원대로 부풀렸는데 많은 언론이 아무 확인도 하지 않고 재생산하는 통에 다들 가짜 정보를 진짜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패션 전문가가 자료를 올리는 과정에서 실수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꾸며낸 포스팅”이라고 덧붙였다.

한 패션 홍보업체 관계자도 “한국에 유통되지 않는 초고가의 낯선 브랜드거나 수백만원대로 알려졌지만 특별주문 제작을 해서 수천만원대로 가격이 오른 가방이 있을 수는 있다”며 “만약 그렇다면 이를 구매한 본인만 아는 정보이기 때문에 남이 사진 한 장만 보고 판별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사실 유명인 패션과 관련해 거짓 정보가 퍼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말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검찰에 출두했을 당시에도 그가 입은 검은색 코트가 이탈리아 명품 로로피아나의 1억원대 제품이라는 내용이 SNS에 떠돌았다. 하지만 로로피아나 측은 “우리 제품이 아니다”며 부인했다. 대한항공 측도 “수십만원대의 국내 브랜드”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금도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 ‘조현아 코트’ 또는 ‘조현아 머플러’를 검색하면 수천만원대의 로로피아나 제품이라는 기사와 블로그가 수도 없이 뜬다.

임세령의 파파라치 패션과 조현아의 검찰 출두 패션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거짓 정보가 실체가 있는 진짜 정보로 둔갑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안혜리 기자 hyer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