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칼럼] 신성한 민족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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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서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언젠가 고국인 터키로 돌아가면 대학교수가 되는 꿈을 갖고 있다. 그때 하고 싶은 강의 중 하나는 ‘영상으로 보는 한국사’다. 학생들이 좀 더 쉽게 한국의 역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영화를 통해 한국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특히 그 출발점을 흥선 대원군의 등장이나 일제 강점기로 잡는다면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후 광복과 분단, 대한민국 정부 수립, 6ㆍ25전쟁, 급속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겪었다.

최근 관람한 ‘국제시장’은 이런 한국의 불행했던 과거를 가슴 뭉클하게 보여준 인상 깊은 영화 중 하나였다. 흥행 측면에서도 대성공을 거둘 만한 작품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영화 평론가들은 이 작품의 성공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헌신적인 가족주의와 과거에 대한 향수를 통해 불행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의 모습을 의미 있게 전달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새로울 것이 없다. 6ㆍ25전쟁으로 아버지, 막내 여동생과 헤어진 주인공이 남은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한다는 얘기다. 영화는 한국인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역사를 가족애를 통해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외국인으로서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불량한 고등학생들이 이주 노동자들을 조롱하는 장면이다. 이때 할아버지가 된 주인공(덕수)이 고등학생들을 나무란다. 주인공은 1960년대 초 가족을 위해 독일에서 광부 생활을 했고 베트남에도 갔다. 이렇기에 주인공은 외국인이 겪는 수모를 그냥 보고 지나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왜 윤제균 감독이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이 장면을 영화에 넣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장면은 외국인의 눈에는 거슬리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감독이 영화에 투영하고 싶은 것은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아닌 ‘신성한 민족주의’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신성한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은 예전에 터키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일베르 오르타일르 박사를 통해 들은 적이 있다. 오르타일르 박사는 “타민족이 봤을 때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민족주의는 ‘신성한 민족주의’다. 이는 자기 민족의 아픔을 다른 사람들의 가슴에서도 똑같이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서 느꼈던 민족주의는 바로 이것이었다. 감독은 이주 노동자를 조롱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내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공의 경험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배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감독이 진정으로 호소하고 싶었던 것은 한민족이 겪었던 불행했지만 신성한 민족주의였다. 이 때문에 한국인이 아닌 내게도 큰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한국에서 만해평화상을 받았던 터키 출신의 페툴라 귤렌은 “말과 감정, 그리고 마음이 서로 손을 잡고 마주해 피운 꽃 위에 맺힌 이슬이 바로 눈물”이라고 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주인공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6ㆍ25전쟁 때 헤어진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아헤매는 장면에서 나는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귤렌이 말한 대로 가슴으로 전달된 감동이 이슬로 맺혀 눈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최근 프랑스에서 언론을 상대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발생하는 등 세계적으로 종교적ㆍ민족적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마음으로 감동을 전달하는 ‘신성한 민족주의’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때인 것 같다.

알파고 시나씨 2004년 한국에 유학 와 충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알파고 시나씨 터키 지한통신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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