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판문점. 붉은 세상쪽인「백승리」마을집들은 어째서 흰색칠들을 해놓고 있고, 정치적으로 백색인 남쪽「자유의 마을」집들은 붉은 빛의 벽돌집들인가?
외국에서 오래살다가 고향에 다니러 왔었던 한 교포학자눈에 그건 꽤나 이상하게 보였었나 보다. 미국 어느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이 교포교수는 판문점에 구경갔던 얘기를 이렇게 의문부모양으로 미국신문에 쓰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세상엔 이상스럽고 기묘한 일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교통신호 등불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똑같다. 똑같은 빛깔인데 어째서 동양에선「청신호」라고하고 서양에선 그걸 「그린라이트」,「녹신호」라고 하는가? 실재하지않는 가공의 동물인데도 용이란 용케도 동양에도 있고 서양에도 있다. 그 용이 동양에선 길한것으로 쳐지는데 서양에선 흉한것을 상징해 왔는가?
코푸는 소리, 트림하는 소리, 똑같이 인체의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다. 어째서 서양 사람들은 코는 창호지가 찢어지게 풀어대면서도 태연하다가 트림만 했다하면 여왕앞에서 누가 방귀라도 뀐듯이 상을 찡그리고 야단들이냐. 그리고 어째서 동양에선 그게 거꾸로냐. 어째서 내 왼손손톱은 오른손 손톱보다 빨리 자라느냐.
개는 오른손이나 왼발이나 사지가 모두다 평등하다. 어째서 사람의 오른손은 왼손을 깔보려고 드느냐. 런던·마드리드·베를린·모스크바등등 유럽 고도들의 빈민촌은 어째서 모두 시 동쪽에 몰려있고 부민촌은 서쪽에 몰려있느냐. 화요일 다음이 수요일, 그다음이 월요일 식이래도 괜찮았을 것을 어째서 월화수목식으로 나가야만 했다는거냐.
동양글은 가로 일어서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가는데 서양글은 어째서 옆으로 누워서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나가느냐…. 아니, 미국신문에서 판문점얘기하나 봤다고 별소리 다하고 앉았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했고 나도 명색이 그축에 드는 거라면 웬만한일의 까닭쯤 눈치껏해서라도 알아야 할거 아니냐. 한데 그렇질 못한통에 기가 푹 죽어 나온소리다. 하나더 하자. 길가다(프랑스에서처럼)개똥을 밟았을때 어째서 왼발로 밟아야 재수가 좋지 오른발로 밟아봤자 허사냐. 이건 내가 안다. 유럽에서처럼 개가 우글대고 보면 하루에 개똥한번쯤은 밟고 살게 마련이다. 이왕 아무래도 밟을것, 그걸로 기분을 상하게 하기 보단 재수라도 좋다고 여기는게 좋다. 그리고 「왼발로」라고 단서하나쯤 붙이는게 아무래도 그럴듯하기도 하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