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심경, 전화 인터뷰] "손가락 아픈데 괴소문까지 … 서러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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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박세리(28.CJ.사진)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수차례 간곡한 요청에도 단호하게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시즌을 접은 터에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더 큰 오해를 살까 두렵다는 이유를 댔다. 20일 LPGA투어 사무국에 '병가(medical extension)'를 낸 것이 마치 성적이 좋지 않으니까 고의로 시즌을 포기한 것으로 비치는 것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덧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아닐까 우려하면서도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간의 소문에 대해서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하더니 차츰 목소리가 높아졌다. 때로는 긴 한숨을 내쉬며 외로움을 호소했다. 인터뷰는 24일 국제전화로 35분 동안 진행됐다.

"답답해 죽겠어요. 7월 말 영국에서 열린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왼쪽 손가락(중지) 인대가 늘어났거든요. 처음엔 3 ~ 4일 쉬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손가락이 점점 부어오르는 거예요. 그래도 훈련을 계속했는데 클럽조차 쥐지 못할 정도로 악화됐어요. 4주 동안이나 치료를 받았는데 회복도 더디고요. 병가 마감 전날까지 기다렸는데도 낫지 않아 결국 병가를 냈지요.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훈련을 중단한 것은 제 평생 처음이에요."

병가를 낸 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집에서 쉬고 있는 박세리는 애써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친구 생기면 공개 … 소개 좀 해줘요

"지금도 손가락에 보호대를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다음날부터 국내에서 난리가 났더군요. '박세리가 명예의 전당 입성 자격을 채우기 위해 고의로 시즌을 포기했다' '성적이 좋지 않으니까 꾀를 냈다'는 등 상상도 못할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서럽기도 하고, 항의하고 싶은 심정뿐이었어요."

박세리는 병가가 명예의 전당 입성 자격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LPGA 투어에서 10년 이상 활약해야 한다'는 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해 2007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듬해나 그 다음해에 도전해도 되는데 뜻밖에 구설에 오른 것이 황당하다고 털어놓았다. 수화기 너머로 박세리의 눈물이 보였다.

"추석 때 송편 먹을 정신도 없었어요. 저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그렇다는 걸 잘 알아요. 그렇지만 엉뚱한 오해를 받으니까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변명하기도 싫고, 너무 서운했어요. 물론 소속사(CJ)에 미안한 마음도 들어요. 10월 말에 열리는 CJ나인브릿지 클래식에는 꼭 나가려고 했는데…. 모든 게 부주의로 다친 제 잘못이지요."

그는 요즘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으로 국내 소식을 접한다고 했다. 무턱대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보면 화도 나지만 팬카페를 통해 격려 메시지를 보내는 팬들의 성원 덕분에 힘이 난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생겨 성적이 좋지 않다더라' '예뻐지려고 턱을 깎았다더라'는 소문을 들어봤는지 물어봤다.

"허허, 저야말로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남자친구가 생기면 제가 먼저 나서서 공개할 거예요. 제가 뭐, 초.중학생도 아닌데. 남자친구랑 팔짱 끼고 영화 보러 갔으면 좋겠어요. 요즘엔 부모님이나 친구들도 좋은 남자를 소개시켜 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에요. 턱을 깎았다고요? 그건 더 이상 대답할 필요를 못 느껴요.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

부상 낫는 즉시 훈련, 제 실력 보여줄 것

박세리는 한국 사람 가운데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남자라면 '오케이'라고 했다. 소박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면 더욱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세리는 10월 초순 잠시 한국에 돌아와 쉰 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훈련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11월 초께면 손가락이 다 나을 거라고 했다.

"손가락이 낫는 즉시 훈련을 시작할 거예요. 말로만 잘하겠다고 하는 건 소용없어요. 이젠 실력으로 보여줘야지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내년엔 정말 달라진 박세리의 모습을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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