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미,전세불리 판단 중공-소련과 비밀접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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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은 1·4후퇴직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계속 밀리게되자 중공과의 휴전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비밀접촉을 시도했다.
이 비밀겁촉은 1951년1월6, 7, 12, 13일 등 4차례에 걸쳐 장소가 밝혀지지 않은곳에서 홍콩거주 미국인 중재자롤 통해 당시 미 국무성의정책기획 담당보좌관「찰스·버튼·마셜」과「존· 데이비스」그리고「중공정권안의 비공산주의 인사」 사이에 이루어졌다.
「첫번째 인물들」(미국측) ,「두번째 인물들」(중재자) ,「세번깨 인물들」(중공축) 로 각각 기록된 이들은 그러나 각국 정부를 공식적으로 대변하지는 않았다.
세번째 인물로 일컬어진 중국인은 중공집권층내의 반소비공산주의 세력과 선이 닿아있는것으로 판단됐으며 그는 이 세력이 미국과의 전쟁(한국전)은 모스크바의 이익만 키워준다는 결론을 내려 모택동올 설득하여 한국에서 손을 eP도록하고 이것이 실패할 경우 배경의 집권 친소세력인「스탈린」파를 제거시키는 쿠데타를 일으킬 계획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다는 극비정보를 제공했다.
중공에서「스탈린파」「민족 공산주의파」에 이어 「제3그룹」으로 지참되는 이 반소비공산세력은 주은내를 포함한 비「스탈린」파, 장개석 쪽에서전향한 국민당출신 강성들,금융졔·실업계인사,그리고 재외 화교세력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국전의 종식,소련 영향권으로부터의 탈퇴,미국과의 관계개선등을 희망하고 있다고 「세번째인물」은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3그룹이 한국전반대여론을 활용할 수 있도록 미국이 유엔을 통해 중공을 침략자로 비난하지말고 중공의 유엔대표권을 인정하고 중국대륙에 대한 무력공격을 삼가야 하며 쿠데타가 성공하는 경우 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여 북미접근이 가능하도록 해야할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에대해 「첫번째 인물」은 중공정권이 중국민을 위한것인지,소련을 위한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묻고 유엔으로부터 침략자로 규탄받아온 한국전개입을 즉각 중단해야 중공의 유엔대표권문제도 쉽게 풀려 나갈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극비접촉공작은「트루먼」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인「애버럴·해리먼」의 적극적 지지룰 받아 추진됐다.
미국은 이 접촉에서 한우도에서 어떠한 영토확보도 느리고 있지 않으며 다만 한국의 독립보전을 위해 침략을 격퇴하는 것이 진의임을 전하고 배경의 개입이 이를 저해하고있다고 명했다.「세번쌔 인물」은 1951년1월29일 배경의 실력자로부티 서한을 받은바「배경의 고위인사」들이 미국과의 접근에 대해 긍정적이며 한국전 종식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견해롤 그 서한이 밝히고 있다고「두번째인물」(중재자) 올 통해 미국무성에 알려왔다. 그는 배경이 먼저 어떤 움직임을 보여야한다는 미국측 요구률 중공고위층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며 다음 조치를 취할뜻도 밝혔다는 점을 함께 전달했다.
즉 중공군이 적대적접촉을 피하여 어느정도 북으로 후퇴함으로써 상호문제 해결에 접근할수있는 체면을 세울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과 이것이 소련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중공정부로서 할수있는 최선의 조치라는 설명이었다.
북경은 또 미국과의 대화를 바라고있으며 장소는 어디라도 좋은 입장이지만 미국과의 대화에서 소련의마음도 횹족시켜야하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중공이 큰소리를 치더라도 미국정부는 배경이 소련과의 관계를 의식하고있다는 점을 인식 해야 할 것이라고 이 서한은 밝히고있다.
이 서한이 모택동·주은내등 중공최고실력자의 견해를 반영 한 것 인가라는「첫번째인물」 의 질문에 「세번째인물」은 이런 초치가 모의 양해없이는 있을수 없는 일 임을 강조했다고「두번째인물」은 보고했다.
북쪽으로의 후퇴에대한 구체적 내용에대한 질문에 「세번깨 인물」은 이서한이 중공이 큰저항 (전투) 없이 서울을 내주고 모든 병력을 38선 이북으로 철수시키는 조치를 밍백히 하고있다고 설명했다.
「애버렁·해리먼」보좌관의 참모「프랭크·로버튼장군은「세번째인물」의 정보가 정확한것같다고 결론짓고「마셜」과「해리먼」보좌관이 직접 만날것을 주선하겠다고 건의했다.
「마셜 은 유엔에서의 중공에 대한 공식 조치의에 비밀협상이 필요함을 주장하고「세번째 인물」을 통한 대화계속을 위해 다음과같이 미국의 입장을 결정하여 통보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건의했다.▲중공군과 북한군은 38선이북으로 철수한다.▲유엔군은 퇴각하는 병력을 공격하지 않고 순찰만을 강화한다. ▲유엔군은 38선을 따라 포진하되 한국군이 더 이상 북진하는것올 막기위해 38신과 한국군사이에 비한국군을 배치한다. ▲중공군은 북한으로부터철수하되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할수 있는 만큼의 병력을 주둔시킨다.▲중공군철수가 시작되면 유엔군은 38선이북의 폭격을 축소하고 유엔군 철수도 동시에 시작한다.▲적대행위가 종식되는 순간부터 비밀협상을 공식화하여 미-중공간의 다른 문제도협상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같은 구체적인 협상에 앞서「세번깨인물」에 대한 지위확인을위해 50년l2월 중공당국이 체포한 미국인선교사「월리엄·월리스」박사룰 석방시키도록 통보하는게 좋겠다고 「러스크」국무차관보가 제안했다.
그러나 며칠후 「세번째인물」 은 중공에 대한 유엔의 침략자규경결의안통과 (2월1일) 로 상황이 어려워졌다면서 중공이 이에대한 흥분을 가라 앉히는데 수주일이 걸릴것이며 한국에서의 상호 후퇴방안도 어렵게 된 것 같다고 알려왔다.
미국무성은 중공의 태도가 경직된 뒤에도 계속 대중공접촉을 시도했다.우선 중공통신사와 관련이 있는 대공보지의 홍콩편집인「에릭·츠우」,모택동과 가까운 정치평론가겸 법률가「참·신·차오」등이 주요채널이 됐다.「에릭·초우」는 한국전쟁이 어느쪽에 의해 발발됐느냐는 문제와 관련,조사한 결과 남한이 먼저 침략했다는 공산측 주장과는 달리 북한이 먼저 공격을 했다는 결론에 도달,이를 기사화했다가 배경으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입장을 배경에 전해 달라는 뜻을 깨닫고 자신이 그런 채널이 되지 못 한다는 것을 시사한것이다.
그뒤「마셜」 등 미국무성의 비밀접촉궁작은 별 진전이 엾었다.
미국측은 한편 같은해 5월과 8월 유엔과 모스크바에서 소련과도 은밀히 접촉,휴전교섭을 추진했다.
미국은 당시「조지·케년」주소대사를 통해『만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지 앓으면 양국이 세계의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해결을 이룰 희망이 거의없다』는 경고를 전달하기 까지했다.「케넌」대사가 5월에 작성한「상황에관한 각서」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기술돼있다. 그는 P(국무성유럽담당부차관 「매튜」를 지침함) 로 부터지시를 받고 귀국,O(「애치슨」국무장관)를 만났으며 0는 그에게 X(유엔주재소련대사「야콤·말리큰)와 접촉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에따라 X롤 만났으며 6월5일 P에게 보번 메모에서 그상황을 다음과같이 밝히고있다. 『X와 만나 한국문제를 거론했다.나는 휴전 문제에 관해 소련측 견해가 어떤 것 이냐고 물었다.그는「소련은 한국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윈하고있다.그리나 소련군이 전쟁에 직접참여하고 있지 않으므로 휴전에 관한 토의에 참여해야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분석한 바로는 그가 모스크바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고 있으며대화중 일본이나 자유중국의 문제가 거론되지 않은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소련이 휴전과 관련된 토의에 참석하기를 꺼리는 것은 북한과 중공때문인것같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휴전을 향한 행동을 취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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