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수학을 모르는 자, 문명을 논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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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기호와 공식이 없는 수학카페
박영훈 지음, 휴머니스트, 264쪽, 1만2000원

어느 날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배우던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이런 것을 배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나요?"

유클리드는 하인을 불러 지시했다.

"저 친구에게 동전 한 닢 주어라. 그는 자기가 배운 것에서 반드시 무엇인가를 얻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유클리드의 제자는 요즘 학생들에 비해 운이 좋은 편이다. 어디 써먹을 데도 없는 걸 머리에 주워담은 대가로 동전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날 교실에서는 얼마나 많은 학생이 '무의미한' 기호와 '공허한' 공식 앞에서 대가는커녕 회초리의 공포에 떨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가. 좌절은 학생들만의 것이 아니다. 교사들 역시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이 늘어가는 현실을 애써 외면해야 하는 무기력증만 느낄 뿐이다.

'기호와 공식이 없는 수학카페'의 저자도 그런 교사들 중 하나였다. 그는 "삶의 온기를 잃고 무생물로 굳어버린 교과서 속의 수학을 매만지고 가르치는 일이 한없이 공허하게 느껴졌던 어느 날" 22년 동안 섰던 교단을 버리고 긴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그리스. 학생들에게 수학적 사고의 매력을 가르치는 게 불가능한 교실을 떠난 수학자에게 수학의 발상지인 그리스는 너무도 당연한 여로였다. 이 책은 그 여행 기록인 셈이다.

저자는 책에서 "자연의 질서를 수로 풀어내고 그 아름다움에 취했던 그리스 철인들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역사상 최초의 수학자인 탈레스로부터 플라톤.피타고라스.유클리드.아르키메데스에 이르기까지 서양 고대 수학의 역사를 인류 문화사의 바탕에서 이야기한다. 그 와중에 수십㎞에 이르는 수로와 콜로세움을 건설한 로마의 실용 기하학은 야만과 무지로 치부되는 억울함을 겪기도 한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에는 수학하면 으레 떠오르는 복잡하고 난해한 기호와 공식들로 무장한 수학의 모습은 없다. 대신 '모든 학문의 여왕'이라 불리는 수학을 낳을 수 있었던 고대 그리스 사회의 철학.문화.예술에 대한 사색과 해설이 담겨 있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수학 시간에 접했던 수식과 도형들의 살아있는 의미를 되새겨보는 새로운 지적 체험을 할 수 있다. 수학하면 넌더리를 치는 수험생들도 잠시 교과서를 덮고 수학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수학 여행'에 참여함으로써 수학 공포증을 떨쳐버릴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이 책에 이어 서양 중세, 근대의 수학사와 동양 고대의 수학을 정리한 책도 펴낼 예정이다.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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