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문학 터치]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윤대녕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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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90년대라는 시대를 기억한다. 80년대라는 거대한 물살이 별안간 빠져버린 시절. 세상은 물 빠진 펄 같았다. 날물 때 펄에 갯것들 고개 내밀듯, 새로운 것들이 나타났다. X세대라는 신인류가 등장했고 '삐삐'라는 상시호출 장치가 발명됐다. '후일담 문학'이란 말이 들려온 것도 그맘때였다.

그리고 오늘. X세대의 자리엔 '엄지족'이라는 디지털 인간형이 들어앉았고, IT 업체의 선언에 따르면 오늘날은 바야흐로 유비쿼터스 시대다. 그리고 후일담 문학. 철 지난 유행이라고, 갑갑하고 가라앉은 문학의 시대는 갔다고 21세기 문단은 말한다.

세월 타령이 길었다. 90년에 등단한 한 작가 때문이다. 그는 줄거리라고는 없다시피 한 무미건조한 이야기를 뿌옇고 흐릿한 문체로 표현했다. 안개 속에서 헤매듯 전진이라곤 좀체 없는 지리멸렬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90년대는 이 낯선 화법에 열광했다. 81년 대학에 들어간 61년생 작가의 이름은 윤대녕이다.

그러나 그는 최근 2년간 섬 제주에 틀어박혀 있었다. "낚시나 하며 소일했다"고 했다. 그리고 4월 조용히 뭍으로 올라왔다. 갯내음 흠뻑 밴 원고 뭉치와 함께였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생각의나무)란 장편의 초고다.

소설은 '아직도' 후일담이다. 작가는 외려 '후일담이 어째서?'라고 따져묻는 듯했다. 그는 "내가 청년으로 살았던 80년대와 90년대로 돌아간다"고 당당히 밝혔다. 요즘의 문단 풍토를 꾸짖는 기운마저 느껴졌다. 세상이 변한만큼 작가도 변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소설은 81학번 영빈과 91학번 해연이라는 남녀의 이야기다. 외로운 남녀의 이야기다. 아니 치매 걸린 영빈의 아버지, 프락치로 몰려 투신한 영빈의 형, 바람난 아내를 둔 해연의 아버지, 외도를 걷고만 해연의 어머니, 그리고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히데코까지, 옛 상처로 인해 여태껏 아프고 힘든 우리네 모두의 이야기다.

문체가 여전히 감각적이라면 구성은 한결 치밀해졌다. 400여 쪽 분량의 소설 2/3를 읽어야 영빈과 해연이 성수대교 붕괴 현장에서 처음 만난 장면을 마주한다. 이전 작품과 다른 것이라면, 아마도 쉬이 읽힌다는 점이리라.

쪽빛 제주 바다에 추억 하나 묻고 산다면, 낚싯대 없이 하루도 못사는 골수 조사(釣師)라면, 무언가 얹힌 듯 명치께가 답답하다면, 지금 이 순간 외롭다면, 그래서 힘들고 서글퍼 가슴에서 호랑이가 만져지는 당신이라면, 이 소설을 권한다. IT가 세상만사를 지배한다는 유비쿼터스의 시대, 한물 갔다는 후일담 문학 하나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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