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아시아] 베트남 보트피플 귀국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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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는 배신자, 돌아와서는 영웅." 최근 베트남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조국을 떠났다 돌아온 동포들을 일컫는다. 이들이 자유시장경제를 엔진으로 베트남을 바꾸고 있다. 그 뒤엔 '향락'이란 부스럼도 남는다.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은 최근 이 같은 특집기사를 실었다.

◆ 변화의 선봉이 되다=지난해 프랑스에서 귀국한 탕롱은 고향 나트랑에 컴퓨터 학원을 열었다. "정보기술(IT)이 조국의 미래를 바꾼다"는 광고문구를 내걸었더니 200여 명의 수강자가 몰렸다. 한 수강생은 "우리의 자유와 서방세계의 자유가 다르다는 걸 인터넷으로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환갑인 투이. 미국에서 30여 년간 행상으로 적잖은 돈을 벌었다. 올 초 고향인 하이퐁으로 돌아온 그는 요즘 조카들의 진학을 적극 돕고 있다. 그의 조카 레밍은 "그동안 농사밖에 몰랐지만 지금은 과외까지 받으며 대학 입시 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말했다.

탕롱과 투이는 1975년 베트남전 종전 이후 공산정권의 탄압을 피해 해외로 나갔다. 당시 400여만 명이 조국을 등졌다. 지금도 200여만 명이 해외에서 살고 있다. 99년까지만 해도 이들에겐 '배신자''간첩''매국노'라는 딱지가 붙었다. 이들이 귀국하면 경찰이 24시간 감시했다. 그러나 5년 전 베트남 정부는 정책을 완전히 바꿨다. 해외동포의 입국을 적극 장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귀국하면 국내 경제에 그만큼 보탬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지난해 모국을 찾은 베트남 동포는 38만 명. 전년 대비 130% 늘어 신기록을 세웠다. 이들의 국내 투자액은 30억 달러를 넘었다.

◆ 국영기업 사장으로=베트남 국회는 올 1월 동포 대우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동포의 모국 투자절차를 간소화하고 관세를 줄여주는 게 골자였다.

또 외국에서 성공한 기업가는 국영기업 사장이나 고문으로 영입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후 국영기업 사장의 10% 정도가 해외동포 사업가로 바뀌었거나 이들로부터 조언을 받고 있다. 동포가 맡은 회사는 대부분 미국의 회계처리방식을 채택했다.

화교도 우대 대상이다. 71세의 덩 선생은 "과거에 화교들은 누구도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77년의 토지개혁과 79년 중국.베트남 전쟁을 거치며 화교는 탄압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엔 투자를 하거나 해외 경험이 있는 화교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전 베트남 중앙은행 총재 뤼밍주(呂明珠)와 전국 방직부문 모범 노동자 천란(陳蘭), 전국 여성연맹 진메이(金梅) 회장 등은 화교지만 해외에서 쌓은 전문성을 인정받아 최고 대우를 받았다.

베트남 정부의 이 같은 방향 수정은 일단 성공적이다. 86년 도이 모이(개혁.개방)가 시작될 때 114달러였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490달러로 4.2배로 불어났다. 93년 인구의 58%였던 절대빈곤층도 지난해엔 28%로 줄었다. 수출은 86년 7억9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65억 달러로 늘었다.

◆ 향락산업도 번창=푸엉(22.여)은 하이퐁시에서 미장원 보조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3년 전 그의 월급은 한국 돈 2만원 내외. 하루는 친구가 하노이의 한 호텔 술집에서 여종업원을 모집한다고 귀띔했다. 둘은 그날로 접대부로 취직했다. 사장은 미국 동포였다. 현재 푸엉의 월수입은 200만~400만원. 그의 꿈은 앞으로 1년만 더 고생해 고향에 큰 미장원을 여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에서 유흥업소 종사 여성은 1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노이 레닌공원 청소부들은 아침마다 100개가량의 마약 주사바늘을 발견한다. 경제 중심지 호찌민의 상황도 비슷하다. 마약 중독자는 매년 수천 명씩 늘어 지난해 말 현재 20여만 명에 이른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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