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포기 합의 이후] 정 통일 "힐 대표 방북 추진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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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국무회의는 정부 중앙청사가 아닌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노 대통령은 '분권형 국정운영'을 천명한 이후 한 달에 한 번만 회의를 주재해 왔기 때문에 일정대로라면 다음달 초에 주재했어야 했다. 특별한 날인 셈이다.

노 대통령은 "좋은 일이 있어 나왔다. 기분 좋은 국무회의다"라고 했다. 전날 베이징(北京)에서 전해진 낭보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웃으며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 일단 수레에 내려놓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기자들에게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것이고 또 다른 시작"이라고 했다.

이런 언급들처럼 9.19 합의는 또 다른 대장정의 시작이다. 몇 년 걸릴지 모르는 지루한 '협상과 이행'의 출발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합의가 깨질까 살얼음 판을 걷듯 해야 하는 길이다.

◆ 향후 절차는=정 장관은 이날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 "미국 측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방북 추진 같은 것, 이런 것을 통해 북.미 간 신뢰부분이 더 깊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성명의 실천을 강조하면서 예로 든 사안이다. 힐 대표도 베이징에서 미국 고위 당국자의 방북 가능성을 열어놓은 바 있다.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의가 빨라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공동성명 합의 내용 중 북.미 관계 정상화 부분은 11월로 예정된 제5차 6자회담 이전에도 시작될 수 있을 듯하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핵 폐기 이행을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 접촉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일 당국 간 접촉 재개가 20일 공식 발표된 만큼 북.미 접촉도 임박했다는 것이다.

또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할 포럼 구성을 위한 논의와 대북 송전 계획을 위한 남북 간 협의도 빨라질 수 있어 보인다. 정부가 이처럼 조속한 후속 협의 채널 가동을 서두르는 것은 어렵게 결실을 맺은 공동성명의 모멘텀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가장 중요한 이슈인 북핵 폐기를 위한 세부 시행 계획은 11월 베이징 제5차 6자회담에서 확정된다. 이 회담에선 북한의 NPT 복귀와 IAEA 사찰이 먼저냐, 경수로 제공이 먼저냐, 또 '상호 조율된 조치'는 어떻게 짜 맞출 것이냐 등의 세부 계획이 확정된다. 북.미 간에 치열한 밀고 당기기가 되풀이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 때문에 공동성명에서 북한에 약속한 '선물'에 대한 논의를 미리 시작해 분위기를 잡아나가야 한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대북 송전이나 북.미 관계 정상화, 대북 안전보장, 평화체제 구축을 논의할 평화포럼 등은 북한이 적극적으로 원하는 의제들이다. 노 대통령이 이날 북한 경제 발전을 도울 수 있는 포괄적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한 것도 이 같은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합의 이행을 위한 회담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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