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일할 나이에…" 능력보다 나이로 「정년퇴직」 시켜서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나의 아버지는 대단한 구두쇠였다. Y셔츠 깃이 해지면 그것을 뒤집어 달아입었다. 그런 아버지도 손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자가용을 안 살수 없었다.
15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좀처럼 타지 않았다. 먼 거리는 버스를 탔고, 가까운 곳은 걸어다녔다. 기름값이 아깝다는 것이었다.
이 무렵 나는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당장에 용돈마저 궁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구두쇠 영감님이 천만 뜻밖에도 용돈으로 쓰라며 넌지시 적지 않은 돈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다.

<미선 정년 높이는데…>
사람은 궁해지면 남에게 비굴해지거나 비굴하게 보이기가 쉽다. 따라서 있을 때 보다 없을 때가 더 처신하기가 어렵다. 술도 남에게 한잔 얻어먹으면 자기도 한잔 살 수 있어야한다. 그러지 못하다면 처음부터 얻어먹지도 말라.
사람은 또 누구나 제값을 지니고있는 것이지만 제값을 다 받을 수 있으려면 절대로 아쉬운 티를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한번 싸게 보이면 끝내 값이 깎여 싸게 팔리고 만다.
그것은 꼭 가난한 집에 보내는 부의금 봉투 보다 있는 집에 보내는 봉투가 더 두툼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아버지는 덧붙여 말했다.
이게 옳다 그르다고 판단하기에 앞서 우선 내게는 몹시 고마운 일이기에 아버지의 소박한 생활철학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다행히 나의 실직생활은 반년만에 끝났다. 그게 아버지의 생활철학 덕분이었는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아도 적어도 남에게 청승스런 꼴만은 보이지 않을 수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나 자신 명함이 없으면서도 명함을 달라고 한다. 그게 어색하지 않게 상대방의 신상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잠시 머무적거리다 명함이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틀림없는 퇴직자다.
이런 사람이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 정년퇴직은 1889년에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복지법을 제정할 때부터 생겨났다. 이 때 「비스마르크」가 정한 정년은 65세였다. 그 후 영·미 각국이 이를 따라 정년을 65세로 잡았다.
65세쯤 되면 일할 나이가 지나 한가로운 퇴직생활을 즐길 만도 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지 근 1백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는 65세라도 더 일할 수 있는 나이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특히 미국에서는 정년을 70세로 올리자는 운동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세 가지 근거가 있다. 하나는 일할 수 있는데도 어쩔 수 없이 퇴직하게되면 신체적·정서적인 질환을 유발하여 죽음을 재촉하기 쉽다는 전미의학협회의 발표를 따른 것이다.
또 하나는 능력이 아니라 연령만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인권에 대한 심한 침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또 유능한 인력의 유휴처럼 국가적으로 큰 낭비는 없다는 주장이 있다.

<50대 되면 불안 속에>
이 하나 하나가 모두 내게는 그럴듯하게 들리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몇 해 전부터 정년은 오히려 내려가고만 있다. 요새는 거의 모든 상사들의 임원은 물론이요 고위공무원까지도 40대 초반이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한참 일할 나이인 50대 초에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것도 그냥 밀려나는 것이 아니다. 『유능한 신진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때로는 또 「신진대사」라는 말을 쓴다. 마치 낡고 무능한 사람을 제치고 청신하고 유능한 사람이 올라선다는 뜻 같이도 들린다.
이래서 밀려나가는 서운함과 억울함에 부끄러움마저 겹치게 된다. 한창 일할 나이에, 그것도 20년 가까운 경험을 통해 얻은 원숙한 솜씨를 이제야 겨우 살릴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 때인데 말이다.
이런 서운함을 달래 주겠다며 친지며 옛 동료들이 마련해주는 술자리도 어느 사이엔가 뜸해지고, 어쩌다 자리를 같이하게 되면 밀려난 쪽에서는 자격지심이, 그렇지 않은 쪽에서는 겸연쩍음이 작용하여 어색스러워진다.
이리하여 젊은 퇴직자는 차츰 바깥출입마저 어렵게 여기고, 밖으로 발산할 길이 없는 울분은 날로 누적되어 심신을 좀먹어 간다. 한창 일할 나이에 말이다.
그러나 젊은 퇴직자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앞날에 대한 태산같은 불안이다. 자리에 따라서는 1억원 넘어 받는 사람도 있다지만 대개의 경우 퇴직금이란 쥐꼬리만큼 밖에 안 된다. 그것은 한 두 해가 못 가서 바닥이 날게 틀림이 없다. 무슨 수를 써서든 새 일자리를 얻어야겠는데 그게 막막하기만 하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원숙해지자 시들어>
미국에서는 대학교수가 택시를 몰아도, 전직 고위공무원이 주유소주인이 된다해도 상관없다. 전직대통령이 버젓이 탤리비전의 뉴스앵커맨이 될 수 있는 나라인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체면을 가리는 나라인 것이다. 따라서 중앙청의 국장을 지냈다면 개인회사에서라면 적어도 이사는 되어야 옳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전관복우를 바라는 것이다.
차관 이상이었다면 비록 눈치 밥을 먹는 곳이라 하더라도 사장쯤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떳떳하게 곰탕집을 차리는 것보다 백 배나 더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본인만 그렇게 여기는 게 아니다. 남들이 모두 그렇게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한 때의 사모님들은 자기 남편이 식당주인이 되거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자리로 옮기는 것은 굶어죽으면 죽었지 창피스러워 못 견딘다고 여기게 된다.
오죽이나 못났으면 그렇게까지 되나 하고 남들이 모멸의 눈초리로 바라볼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체면보는 풍토 문제>
같은 식당을 차린다해도 주인을 내세우면 상관없다고들 본다. 농사짓는 것은 나빠도 농장을 경영한다고 해야 체면이 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까짓 남의 이목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제 길을 찾아 나서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한 줏대가 있는 사람이라면 당초에 한 직장에서 한 평생을 묻도록 어리석은 짓은 하지도 앉았을 것이라는 역설 아닌 역설도 나온다.
이리하여 지위가 높았던 퇴직자일수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들어간다. 영화를 누릴 만큼 누린 사람들이라면 별로 딱할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다. 이런 사람들은 또 얼마 되지도 않는다.
지난주부터 주총이 끝난 회사마마 승진을 축하하는 화환들로 차고 관청에서는 또 영전에 대한 축전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 웃음의 잔치에 밀려 오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직장을 떠난다. 한창 일할 나이에…. <저자 추도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