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북핵, 돌연사 게임에서 윈 - 윈 게임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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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마침내 북핵 회담이 타결되었다. 이번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이 채택된 것은 북핵 문제가 합리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운동경기에 '돌연사(sudden death)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게임 시간을 다 소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부를 가릴 수 없는 상황에서 단시간 내에 승부를 결정짓기 위해 먼저 점수를 내는 쪽이 승리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본 게임 내내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여주었더라도 돌연사 게임이 시작된 뒤 한순간의 방심으로 상대방에게 점수를 내주는 순간 다른 한쪽은 졸지에 패배자가 되고 만다. 말 그대로 '돌연사(突然死)'하는 것이다.

이번 제4차 6자회담 2단계 회담은 일종의 '돌연사 게임'이었다. 1단계 회담까지는 6자 중 어느 일방이 승리했다고 할 수 없는 팽팽한 접전의 양상을 띠었다. 그러나 2단계 회담에서는 중국 측이 '경수로 논의 가능'과 '북한의 핵 폐기 우선 원칙'이 모두 포함된 절묘한 수정안을 제시했다. 미국이 경수로가 포함된 데 대해 불만을 갖고 수정안에 대해 'No'라고 하는 순간 북한이 'Yes'라고 해 버리면 미국이 판을 깬 장본인이 되어 돌연사하게 된다. 반면 북한이 핵 폐기 우선 조항에 대해 반기를 들고 'No'라고 하는 순간 미국이 'Yes'라고 해 버리면 북한이 핵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확인돼 버린다. 북한이 돌연사하는 것이다.

중국은 일반 운동경기와 달리 이번 회담에서 '윈-윈 게임'을 도출하기 위해 돌연사 게임을 연출했다. 미국과 북한은 돌연사하지 않기 위해 결국 '비기기 전략'을 택했다. 중국 측 수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공동성명안을 타결시킨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경수로가 앞으로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나 북한의 핵 폐기-검증-관계 정상화라는 단계적 접근법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수정안을 받아들였다. 미국이 이러한 융통성을 보이게 된 데는 현실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한 한국 정부의 역할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 중국 측 수정안의 내용도 사실 한국 측이 '힌트'를 제공한 측면이 크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경수로로 상징되는 평화적 핵 이용권을 확보한 이상 앞으로 '평화'라는 화두를 바탕으로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핵 문제보다 우위에 놓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핵 폐기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맞교환하는 일괄타결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렇듯 이번 6자회담 타결은 '창조적 모호성'에 의존하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실무회담 등을 통해 모호성을 명확성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중국의 중재 역할이 중요했지만 앞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을 위한 구체적 논의들이 등장할 것이므로 한국의 입장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 사항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속히 복귀해 충분한 신뢰를 쌓은 뒤 경수로 건설 등을 포함한 평화적 핵 이용 문제를 논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뢰가 축적되지 않으면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의 실질적 행사가 불가능하다.

둘째, 평화체제 문제와 핵 문제가 뒤섞이는 상황을 방지해야 한다. 6자회담과 별도로 평화체제 논의는 하되 구체적 조치는 핵 폐기 진전 상황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북핵 이후의 상황을 전제로 한 한.미 동맹의 '비전'을 설계해 나가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후 한.미 동맹의 청사진이 있어야만 미국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앞으로는 전략적 큰 그림을 가지고 북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