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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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예비소집에 다녀온 올해 취학아동인 둘째는 벌써 여러 친구들과 학교 다닐 생각에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작은 엄마는 책가방을, 이모는 필통을, 삼촌은 운동화를 사주시겠다는 전화를 받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기뻐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4년 전 큰 아이를 입학시키고 나서 잠시 극성부렸던 일을 생각하니 새삼 부끄러워진다.
맑고 작은 눈동자를 이리 저리 굴리며 선생님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모습이 콧등이 시큰하도록 대견스러운 것은 첫 아이 학교에 보낸 엄마들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혹시 다른 아이들한테 뒤떨어지지나 않을까 하여 온통 학교에만 신경이 쏠려있는 가운데 반장 임명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큰아이는 1월 생일이어서 7살에 입학했으므로 다른 아이들보다 체격도 떨어지고 마음도 연약한 소극적인 남자아이였다.
욕심대로 반장이라도 하면 소극적인 성격이 통솔력 있고 용기 있는 아이가 될 것 같아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얘, 네 아들하고 ○○하고 반장 후보에 올랐는데 선생님이 고심하고 계신다니 이럴 때 찾아가봐야지.』 그 말을 듣고 내 가슴은 두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돈을 넣은 봉투를 들고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 그러나 선생님은 『걱정 마세요. 순리대로 다 해놓았으니 아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하시며 봉투를 내게 다시 돌려 주셨다.
이튿날 반장 발표가 있었는데 극성스러운 엄마들의 추측과는 달리 가난하지만 영특한 아이가 반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때 나의 수치스러운 마음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하마터면 불순한 교육가치관으로 평생 아이들에게 물질만능주의를 가르칠 뻔했던 나의 시행착오를 교육자의 올바른 신념으로 일깨워 주신 선생님이 늘 고맙게 생각된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그 동안 배운 솜씨로 자그마한 등나무 바구니 두 개를 짜서 큰아이 담임선생님께 선물하였더니 선생님은 아이에게 한 아름 과자를 들려보내셨다.
선생님과 학부형 사이에도 욕심 없는 따뜻한 정을 주고받으면 우리의 앞날은 아이들 마음만큼이나 밝아질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은평구 갈현동489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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