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번돈으로 고교진학 거뜬"|아르바이트 버스안내양 춘천·유봉여중생 35명 귀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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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안녕!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올 여름방학때 또 올께요』
지난해 12월20일 『내손으로 학비를 벌겠다』며 흥안운수 (상계동110의8)소속 10번 시내버스 안내양으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던 춘천유봉·춘천여중 졸업반 학생 35명(중앙일보 82년12월28일자 사회면보도)이 고된 2개월간의 계약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28일상오 동료안내원들의 전송을 받으며귀향길에 올랐다.

<예금통장 31만원>
이들이 춘천으로 떠나는 흥안운수 정류장에는 언니 안내양 20여명과 회사대표 조성일상무(35) 임직원들이 나와 손을 혼들며 석별의정을나누었다.
3월 2일 춘성여고에 진학하는 금명자양 (17·춘천여중졸)은 회사에서 만들어준 31만2천9백76원의 큰돈이든 예금통장을 가슴에안으며 『생각했던것보다 무척 힘들고 고달프기도 했지만 내손으로 번돈으로고교진학을 하게돼 무엇보다기쁘다』며 밝게 웃었다.
홍천여고에 진학하는 문미숙양 (17·유봉여중졸) 은『그동안의 생활중 버스안에서 4만원을 소매치기당했던 여자승객의 돈을 찾아주었넌 일이 가장 잊혀지지않는다』고 했다. 문양은그날 소매치기를 당했다며울부짖는 40대 아주머니의고함소리를 듣고 즉시 운전기사에게 알려 버스를인근 태능경찰서에 세우고범인이 버린 현금이 그대로담긴 지갑을 버스바닥에서발견,주인에게 둘려줬다.
감기몸살때문에 목이 쉬어 안내방송을 못해 승객으로부터 호통을 받았던최승난양(17·춘천여중)은 목이쉬어 방송을 못한다고 양해를 구했는데도 「××년」등마구 욕설을 들었을때는버스안에서 울고 말았다면서『사회인심이 너무 야박한것같다』 고 말하기도했다.

<고액권낼땐 곤혹>
떠나기 전날까지 일을했다는 이순옥양(17·춘천여중졸)은 『두달간의 아르바이트가 보람이 있었어요.이제는 무엇이든지 해낼수있는 자신감이 생겼읍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름방학때 다시 돌아오겠다는 지선녀양(17·유봉여중졸) 도 『안내양들을 대하는 손님들 눈이 너무차갑게 느껴져 창피하고 괴롭기도 했지만 「시민의 발」로 사회에 봉사한다는 긍지로 일했다』고 했다.
그러나 15∼16세밖에 안된 소녀들이 겪은 69일간은 1년만큼이나 길고 지루한 나날이었다.
새벽3시 기상. 살을 에는 차가운 날씨에「학생아르바이트」라고 씌어진완장을 두르고 4시쯤 첫차에 오른다.
상계동∼동대문구간을 1시간30분 걸려 종점에 돌아오면 아침식사를 한다. 다람뒤 쳇바퀴돌듯 하루종일 10회 왕복근무를 마치고 지친몸으로 회사기숙사에 돌아오는 시간이 밤10시30분.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출퇴근 만원버스에서 손님이5천,1만원짜리 고액권을 낼때와 본의아니게 오해를받는 경우.
여원봉양(17·춘천여중)은 유리창에낀 성에때문에밖이 보이지않아 문을 안열었다가 손님으로부더 『추우니까 약아빠져 문도 안연다』며 핀잔을 들을때는너무 억울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고충속에서도 하루 18시간 근무중 가장즐거운 시간은 20분간의 세끼식사시간과 취침전 근무에서 들아온 동료들과 환담을 나누거나 고향에 편지를 쓸 때-.
최미자양(17·유봉여중)은 『차안에서 틈틈이 책과씨름한 덕분에 유봉여고에응시, 합격했다』며 『이번경험을 살려 틈나는대로 학비를 벌어 대학진학의 꿈을 꼭 이루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아르바이트를 마친 이들학생중 20명은 고교진학을0하고 나머지는 고향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정식안내양으로 취업할 계획.
가정형편 때문에 계속 안내양을 하겠다는 김은숙양(17· 춘천여중졸) 은『새벽일찍 짐꾸러미를 싸들고 시장이나 일터로 가는 사림들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를 처음 깨닫게 되었다』 며 앞으로 굳세게 일하면서 삶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했다. 金양의 꿈은 2∼3년간 돈을모아 조그마한 가게를 차려 독립하는 것.

<고된근무…5명낙향>
이둘이 일한 기간은 정확히 2개월9일. 그동안 받은 보수는 39만9천9백16원. 이중 식대 8만6천9백40원씩을 빼고 각자가 31만2천9백76원을 손에 쥐었다.
이회사 상무 조씨는 『처음에는 주위에서 어린 소녀들을 워험한 환경속에집어 넣어 혹사시킨다』는비난도 많았지만,학생들이 너무 잘해주어 이제는 오히려 칭찬을 듣고있다면서『도중에 5명이 고된 근무를 견디지 못하고돌아가긴 했지만 나머지 학생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떠나는것을 보니 한없이 기쁘다』 고 했다.
조씨는 올 여름방학때도희망하는 학생들을 아르바이트 안내양으로 채용하겠다고 말했다.<이만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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