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직 수락거부로 약사회 공전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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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한약사회는 23일 교육회관에서 정기대의원총회를 소집, 후보 출마를 포기한 민정당 소속 이상섭 의원을 본인도 없는 사이 회장으로 선출했으나 이 의원이 회장직 수락을 거부, 회장자리가 공중에 뜨게 됐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대의원 1백 86명은 후보 등록과는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투표용지에 써넣었고, 개표결과는 한 때 회장 출마 의사를 비쳤다 사퇴한 이 의원의 당선으로 밝혀졌다. 그 순간 이 의원은 이 같은 사실조차 까맣게 모른 채 지방 출장 중이었다.
그동안 공석중인 대한약사회 회장 감투를 서로가 노리며 과열됐던 선거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선거였다.
이 같은 결과를 빚게 된 것은 당초 유력한 회장 후보자로 등장, 선거운동을 펴왔던 이 의원과 현현 회장 직무대리인 김명섭씨가 주위의 종용을 받고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회장 출마를 포기한데서 비롯된 것.
그러자 대의원들이 이에 반발, 이들을 계속 밀며 사퇴한 두 후보에게 투표, 결국 이 의원을 회장으로 선출한 것이다.
그러나 회장으로 당선된 이 의원은 출마 포기를 공식 선언한 바 있고, 민정당측에서도 약사회 회강 선거 직후 대책회의를 소집, 『직능단체가 장외 정치의 장이 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 당의 기본방침』이라며, 이 의원의 회장직 수락거부를 종용, 결국 회장사퇴를 결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대한약사회장 막후 선거전이 서서히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초부터.
그때까지만 해도 작년 6월 23일 약사파동 때 열린 임시 총회에서 대한약사회장 직무대리직을 맡은 김명섭씨가 차기 회장이 된다는 것은 기정 사실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1월 1일 신년교례회 때 이상섭 의원이 참석, 은연 중 출마할 뜻을 비쳤다는 소문이 들리면서부터 이 같은 기정사실이 깨지고 선거전이 열기를 띠게 됐다. 게다가 전 대한약사회부회장 김성준씨도 뛰어들어 선거전은 열기를 더해 갔다.
○…이 의원이 출마를 결심한 것은 민정당 당직자의 권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약대를 졸업,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이 의원에게 지역구 기반을 다지고 정치수련도 쌓게하기 위해 출마를 권유했다는 것.
게다가 초반에는 약사회측에서도 『약사의 이익을 대변하려면 힘있는 여당 의원이 좋다』며 반응이 좋았다.
그러나 이 의원과 김 회장 직무대리간의 선거전이 과열되자 『직능 단체에서의 정치 대결은 그 단체 뿐 아니라 정치 전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면서 이 의원에 대해서는 민정당측에서, 김 회장 직무대리에 대해서는 감독관청인 보사부측에서 각각 후보 출마 사퇴를 종요, 결국 두 후보는 선거 막바지에서 자의반·타의반으로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약사회 대의원들은 이 같은 사정을 알았지만 이에 불응, 두 후보 추대 공작을 계속해 결국 후보없는 회장 선출의 결과를 낳았다.
그 같은 결과를 빚은 데는 회장 선거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것도 한몫을 했다.
이 의원은 아예 회의에 참석조차 않은 채 지방에 내려갔고 김명섭씨는 선거운동을 중단한 채 회장직대자격으로 회의장에 나갔다.
약사회 정관에는 『총회에서 재적의원 과반수의 지지를 얻는 자를 회장으로 선임한다』고만 규정, 후보 등록·본인 서명·추천인 등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도 없다.
대의원들은 선거 방식을 놓고 갑론을박하면서 표결을 했다.
『후보를 추천, 출마변을 듣고 투표하자』는 안과 『후보추천도 출마변도 필요없이 무조건 투표지에 지지자를 써넣자』는 2개의 안을 놓고 표결한 결과 후자가 이겼다.
이 같은 전례 없는 방식이 채택된 뒤 투표를 진행, 표결한 결과는 누구도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최고 득점자와 차점자인 이 의원과 김씨 등 두 사람을 놓고 다시 결선투표를 해야했으나 정회 시간에 김씨가 사퇴를 선언하는 바람에 결국 불참한 이 의원이 만장일치로 회장으로 선출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의 회장직 사퇴로 약사회의 운영은 한동안 공전할 우려가 없지 않으며, 대의원들의 전체의사로 선출한 회장이 사퇴함에따라 회장 재선출을 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순순히 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석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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