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칼국수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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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가끔 칼국수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 시장 국수집에 가서 콩가루 한줌 얹어 주는 축축한 국수를 사서 끓여 먹지만 집에서 만든 칼국수 맛엔 어림도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칼국수를 자주 만드셨는데, 칼국수 만드는 날은 참 신명이 났다. 그건 국수를 다 썰고 끝에 조금 남겨 주는 것을 잿불 쑤석거려 구워 먹는 재미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늘 그렇게 후하게 남겨주지는 않으셨다. 국수 써는 앞에 앉아 『엄마!…고만 고만 썰어』해도 겨우 손바닥만하게 남겨 주시면서 국수 한 그릇은 된다고 하셨다.
결혼을 하니 시어머님께서도 칼국수를 자주 하셨다. 친정어머니는 콩가루를 많이 넣어 약간 도톰하게 밀어 곱게 썰어 끓여 한번 건져 웃고명을 얹는 칼국수를 만드셨는데, 시어머님은 콩가루를 적게 섞어 얇게 밀어 제 국물 그대로 퍼서 잡숫기를 즐기셨다.
결혼생활이 몇년 지나서야 내 손으로 직접 칼국수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쉽지가 앉았다.
바람이 설렁설렁 건조한 날은 국수반죽이 조금 축축해야 되고, 덥고 우기가 찬 날은 반죽이 단단해야 국수가 매끈하게 잘 밀려 나간다. 국수를 밀 때면 어렸을 때 국수 꼬랑이 구워 먹던 생각이 나서 반죽을 많이 해 앞뒤를 뭉턱 잘라 애들에게 구워주며 『맛있지?』하면『그저 그래요』다.
국수 꼬랑이를 즐겁게 구워 먹던 시절은 계란껍질에 쌀을 안쳐서 재를 파고 얹어 밥해먹던 시절과, 또 푸새도 자주 하시던 어머니, 강독뚜껑에 들들 분 쌀을 같아 풀 끓일 때 그 쌀무거리를 포도잎사귀에 싸서 잿불 속에 묻어 구의 먹던 시절과 함께 잊힐 듯 잊혀지지 않는 아득한 추억 속의 즐거움일 뿐이다.
오늘은 집에서 손수 칼국수를 만들고 싶었다. 이사올 때 안반과 홍두깨를 친척 주고 왔더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할수 없이 도마에다 방망이로 밀어 우동 같은 칼국수를 만들었으나 점성을 기울인 탓인지 모두 맛있다며 즐겁게 먹어 기분 좋았다. 『국수꼬랑이 구워줄까?』하고 물었으나 싫다고 한 두 애가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경북 상주군 상주읍 인봉동 82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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