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노천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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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기자의 사무실은 투르 몽파르나스 빌딩 6층에 있다.
이 빌딩은 초현대식으로 건축된 56층 건물로 파리에서 가장 높아 꼭대기의 전망대는 관광코스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일대는 「헤밍웨이」가 단골로 다녔다는 카페, 영화「파리의 마지막 탱고」의 무대였던 카바레식당등 유명 카페와 레스토랑, 10여개의 영화관이 인접한 도시중의 도시이다. 한쪽에는 파리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슈퍼마키트도 있다.
사무실 남쪽창으로 「사르트르」등이 묻혀있는 몽파르나스 공동묘지까지 곧바로 뻗은 가로수길이 내려다 보이는데 이곳에선 한주일에 두차례 노천시장이 선다.
파리의 노천시장은 인근 시골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상품을 손수 내다 파는 곳으로 각구마다 정해진 날 장이 열린다. 「포리뫼르」(만물 또는 신선한 야채등)를 직매하는 「프리뫼리스트」(프리뫼르를 재배, 판매하는 사람)들의 정기시인 셈이다. 이들은 한구역의 장이 파하면 장이 서는 다른 구역으로 옮겨가 판을 벌이고 또 다음장터를 찾아 이동한다.
『대대로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집 소시지를 한번 잡숴 보이소.』
『후로마즈(치즈) 만들기 4대, 우리집 후로마즈가 맛이 없다면 후로마즈가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전등불밑에서 낳지않은 진짜 달걀, 이제 얼마 안남았읍니다.』
파리의 한가운데서 듣는 순박한 시골사람들의 외침은 어쩌면 고향냄새에 가깝다.
도시의 번잡속에 파고 든 노천시장은 아무래도 이색적이어서 장이 서는 날이면 전망대에 오르기보다 이 장터에 섞이는 관광객이 훨씬 더많다.
병원처럼 깔끔한 슈퍼마키트만을 드나들어야했던 이민생활에서 까마득히 잊고있던 고향장터의 정겨운 모습을 대서양건너 이곳에서 모처럼 다시 만난 때문인것 같았다.
파리의 노천시장은 현대와 과거의 공존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는 노천시장은 더욱 그러하다. 현대식 고층빌딩과 현란한 간판들, 그리고 쉴새없이 오가는 자동차행렬들의 주변환경과 노천시장이 그렇게 썩 잘 어울릴수가 없다. 아니, 주위환경은 차라리 노천시장을 위한 무대장치라고나 할까.
반드시 노천시장이 아니어도 좋다. 파리에선 이같은 새것과 옛것의 조화있는 공존을 곳곳에서 보게된다. 그리고 이런 공존이 이 도시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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