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만 연금개혁 공개 약속 … 이번엔 제대로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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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간 ‘한 우물’을 판 최재식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은 “미래 세대를 위해 정치권이 욕먹을 각오를 하고 지금 제대로 된 개혁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포토]

공무원연금 개혁이 끝내 해를 넘기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연내 국회 통과를 수차례 공언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국회가 내년 5월 2일 이전에 법안 처리를 합의했지만 이번에도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질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공무원집단(107만 명)의 조직적 저항, 좌고우면하는 정치권 때문이다.

 최재식(57)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골든 타임이 째깍째깍 흘러가는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한다. 그는 정부와 국회가 결정한 정책에 따라 현장에서 연금 업무(기여금·부담금 등 징수와 연금 지급)를 실제로 수행하는 연금공단의 수장이다. 연금 적자가 누적돼 올해에만 2조4854억원의 적자를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할 상황이라 최 이사장은 누구보다 심각하게 “이번만은 제대로 된 개혁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1977년 7급 공채로 총무처(인사혁신처의 전신)에서 처음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37년간 공무원연금과 씨름해왔다. 총무처 연금국에서 일하면서 연금 업무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82년 공직을 떠나 그해 출범한 연금공단 창설에 참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금공단 설립 32년 만에 첫 내부 승진 이사장으로 지난 9월 그를 발탁했다. 한국연금학회장을 역임한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최 이사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공무원연금 전문가”라고 평가했다.

 37년간 공무원연금 업무를 하면서 최 이사장은 수많은 개혁 보고서를 냈다. 이 과정에서 역대 정부의 정책 결정과 개혁 작업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공무원연금제도가 어떤 굴곡을 겪어왔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이유다. 그는 공무원연금제도의 적폐(積弊)는 어느 한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 60년대 이후 역대 정부 정책 결정자들의 무책임이 누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60년에 도입된 이후 54년간의 공무원연금 역사에서 결정적 ‘판단 미스’라고 최 이사장이 지적한 것은 박정희 정부 때인 62년의 공무원연금 수령 개시 연령 제한 폐지다. 당초 재직 기간이 20년을 넘고 60세 요건을 충족해야 연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연령 제한을 없애면서 두고두고 연금 재정에 부담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80년대 초반부터 공무원연금제도가 이대로 가면 문제가 생긴다고 장기전망 보고서를 냈지만 그때마다 정책 결정권자들은 “지금은 문제 없는데 왜 나서나. 미래의 일이니 일단 덮어두자”며 개혁을 외면했다고 한다. 결국 95년부터 공무원연금에 적자가 발생했다. 김영삼 정부는 95년 1차 개혁을 하면서 연금 지급 개시 연령 조항을 다시 만들었지만 기존 공무원들의 기득권을 인정했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2차 개혁을 했지만 여전히 기득권을 인정했고, 특히 연금 적자를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조항을 신설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연금 개혁 자체가 흐지부지됐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3차 개혁을 한다면서 여전히 구조 개혁을 하지 않아 기득권에 손을 대지 않았다.

 최 이사장은 “박 대통령 이전에는 역대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공개적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을 약속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개혁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땜질 개혁에 그쳤고 부담은 미래 세대에 전가됐다”고 말했다.

연금 개혁의 해법에 대해 그는 “연금 정책은 과거·현재·미래를 한데 놓고 봐야 한다”며 “고령화가 심각해지는 만큼 연금 지급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개혁을 추진하는 주체 세력이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연금 개혁을 미루는 것은 자식과 후손의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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