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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나침반] 아슬아슬한 스릴이 매력 토론·퀴즈 프로 생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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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생방송'이라는 노래도 있지만 TV개국 초기에는 드라마조차도 생방송을 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말하면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라며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기술이 부족한 시대에는 그 난국을 타개할 또 다른 기술이 필요했을 터이다.

배우들은 NG를 안 내려고 철저하게 대사를 숙지하고 카메라맨들은 소음을 내지 않으며 사뿐히 다음 세트로 이동하는 연습을 부단히 했을 것이다. 작가는 생방송에 맞게 동선을 고려하여 대본을 썼을 터이고 시청자들은 좀 어색한 연결을 발견해도 너그럽게 참아주는 도량이 있었을 것이다.

생방송이라는 걸 은근히 자랑(?)하던 때도 있었다. 사회자는 가끔 손목시계를 보면서 "지금 시간이 몇 시 몇 분인데요."라며 '라이브'임을 과시했다. 지금은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TV장르가 대체로 정해져 있다. 뉴스와 선거개표, 스포츠경기, 토론, 가요순위 프로그램, 연예정보 프로 등이다. 한때 화제가 된 '내 귀의 도청장치'라는 유행어는 생방송 뉴스 도중 스튜디오에 들어온 침입자의 육성에서 비롯됐다.

MBC '퀴즈가 좋다'는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최초의 퀴즈프로다. 예전엔 생방을 하고 싶어도 점수를 기록하는 전식(電飾)의 잦은 고장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노련한 사회자 임성훈씨가 출연자에게 "다음 주에 시간 내줄 수 있으시죠?"라고 물으면 그건 끝날 때가 됐다는 예고다.

5월 첫 주 방송에서는 출연자가 '공소시효'를 '형의 시효'라고 답한 것을 정답으로 처리하여 시청자의 항의사태를 빚었는데 만약 시간을 다투는 생방이 아니었다면 전문가의 고증을 받은 후 다시 녹화를 했을 게 틀림없다.

생방송의 묘미는 긴장감이다.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하다. 5월 첫 주 KBS2의 '100인 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서는 생방의 매력과 한계가 한꺼번에 전달되는 풍경이 있었다. '유시민 의원의 복장파괴 논란'이 이슈였던 그 날, 방송 들어가기 전에 패널로 출연한 어느 신문사의 논설위원에게 한 젊은이가 다가와 "힘 내세요"라며 '격려성' 발언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생방송이 시작된 후 방청석에 앉은 젊은이의 태도는 돌변했다. 그 신문사의 보도태도를 강하게 질타한 것이다. 논설위원의 배신감이 생방송 화면에 고스란히 잡혔다. (그는 말까지 더듬으며 충격의 여파를 드러냈다.) 사회자의 곤경에 찬 표정 또한 카메라는 가감 없이 전달했다.

생방송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지난 주 'MBC 100분토론'이 정치개혁을 주제로 다루면서 이른바 '끝장토론'을 기획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시간, 공간보다 중요한 건 역시 인간이다. 예전에 어떤 학자는 '생방송 아니면 안 나간다'라고 선언한 적이 있다. 녹화방송에서 자신이 한 말 중 많은 부분이 잘리고 실제 방송에선 제작진의 의도나 구미에 맞는 말만 편집되어 나갔던 것이다.

이상주의자를 현실주의자로 바꿀 수 있는 게 편집의 마술이다. 생방송에는 묘미도 있지만 함정도 있다. 경비뿐 아니라 준비(사전, 사후)도 철저히 해야 제작진, 출연자, 나아가 시청자도 개운함을 느낄 것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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