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오백원어치 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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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텔리비전에서 한복율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나와『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애교있게 웃으며 절했다.
텔리비전을 보고있던 7살난 아들녀석이 갑자기『나복 많이 받았는데 또 받으래』하며 소리친다. 나는 아들녀석이 많이 받았다는 복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다.
『민근아, 복 얼마만큼 받았어?』
『나는 이만큼』하고 팔을 벌릴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녀석의 대답은 기상천외였다.
『천 오백 원어치 받았어. 할아버지한테.』
식구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나는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구나, 세배돈의 양을 복으로 생각하다니 요즘 아이들은 참 무서운 아이들이다. 돈은 곧 복인것이다.
이 아이에게 어떻게 복을 설명해야할까. 나는 복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세배를 한다고 해서 곧 돈을 지불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돈은 곧 복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될때 까지는.
우리 어린시절엔 세배를 하면 기껏해야 곶감 몇개을 얻거나 세배돈이라야 지금돈으로치면 동전 몇닢에 불과했다.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했었다. 요즘 아이들은 절을해도 돈을 주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즉 돈받기 절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라고 백원짜리 동전 몇닢 주었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우리 어른들이 쉽게만, 편하게만 살다보니까 우리아이들이 이꼴이 되어버렸다.
지난날 우리네 부모들이 우리의 명절옷을 밤세워 손수 지었듯이, 우리도 인스턴트 라면을 끓여주듯 아이들에게 세배돈을 즉석에서 줄것이 아니라, 꼭 주고 싶다면 좀더 정성이 깃든 선물을 준비했다가 준다면 우리아이들도 복온 곧 돈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될듯도 하다.
김상자<대전시용전동 주공아파트 13동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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