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기말고사 문제 못 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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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교육업체 K사가 운영하는 Z사이트에는 전국 초.중.고교의 기출 시험문제 26만7000여 건이 올라와 있다. 6개월에 5만~8만원을 내고 회원 가입을 하면, 원하는 학교의 시험문제를 PDF나 한글 파일로 다운받아 볼 수 있다. 이렇게 학교 기출문제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대여섯 개 정도가 현재 운영 중이다.

중간.기말고사 기간이면 중.고등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기출문제를 구하려는 학생들이 몰린다. 가격은 과목당 500원 정도다. 학교 앞 서점에서는 아예 '○○고 국.영.수 기출문제집'이라는 제목으로 몇년치 문제를 모아 팔기도 한다.

입시학원들은 인근 학교의 최근 2~4년 동안의 기출문제를 확보해 학원생들에게 제공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온.오프라인을 통한 이런 식의 학교 기출문제 판매가 불가능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경기고.숭문고 교사 32명이 "중간.기말 고사 문제를 무단으로 도용당하고 있다"며 인터넷 학습업체 K사를 상대로 낸 저작물 반포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14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시험문제는 교사들이 내신성적 산출을 위해 정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출제한 것으로 창작성이 인정되므로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며 "K사는 시험문제를 복제.판매.배포하거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소송을 주도한 한국교총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교육기관에 의해 교사들의 평가권이 왜곡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됐다"며 법원의 판결을 환영했다. 또 "앞으로도 인터넷 사이트와 학교 인근 서점.학원 등의 저작권 침해 사례가 있는지 계속 감시해 위반사항이 있으면 형사고발 등 제3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K사 관계자는 "학교 기출문제는 공적인 자료고 학생이나 학부모는 이를 볼 권리가 있다"며 "소송 당사자가 아닌 교사들이 출제한 시험문제는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 계속 서비스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입시학원 관계자는 "그동안 교사들이 오답 시비 등을 꺼려 시험문제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교육이 이를 이용해 온 것"이라며 "학교나 교육청 홈페이지에 7차 교육과정이 도입된 이후 출제된 시험문제는 모두 공개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기출문제를 공개하면 학생들도 사교육을 이용할 필요가 없고, 교사들도 문제를 잘 내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년부터 출제되는 중간.기말고사 문제는 의무적으로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할 방침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출제된 시험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침이 없다.

김현경.한애란 기자

학교 기출문제 판매 유형

① 인터넷 거래:기출문제 전문 사이트에서 학교.교사별 시험문제를 유료로 다운로드

② 출판물:군소 출판사들이 학교별로 시험문제 모아 출판해 학교 인근 서점 등을 통해 판매

③ 학원에서 제공:입시학원이 인근 학교 기출문제를 수집.복사해 학생에게 제공

④ 기타:학교 인근 문방구에서 과목별 문제를 모아서 복사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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