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행복은 '성격' 순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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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종강하셨죠?” 그러나 여유 부릴 계제는 아니다. 성적입력을 마쳐야 한숨 돌릴 수 있다. 광고카피가 기억 속에 나부낀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하지만 가뿐히 짐 꾸릴 수 없는 처지다. 평화는 철조망(웹메일) 너머에 있다. 이번엔 ‘억울한’ 학생의 신문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제가 왜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대략난감.

 실습과목의 운명이랄까. 교수는 다가올 환난에 대비책을 강구했다. “A를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학칙은 학칙이다. 상대평가 규정을 따라야 한다. 열심히 하고 잘한(성과물이 좋은) 사람은 A, 열심히 안 하고 잘하지도 못한 사람은 C, 열심히 했으나 성과물이 안 좋은 사람, 그리고 성과물이 뛰어나도 결석·지각이 많거나 과제물을 제때 내지 않은 사람은 B.” 문제는 교수의 안목과 기준에 ‘BC클럽 멤버들’이 동의하느냐 여부다.

 “무시해 버리세요.” 이건 조언이랄 수 없다.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학생이 교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게 가당한 일인가요?” 대낮토론이 시작된다. “권위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 불의에 항거한다고 학생은 생각할 겁니다. 불의가 아니라는 걸 교수는 납득시켜줄 의무가 있죠.” “참 피곤하게 사시네요.” “깔끔하게 살려는 거죠. 이것도 수업의 연장이니까. 사실 권위는 지키는 게 아니라 생기는 거죠. 실낱 같은 권위를 지키려고 버티다가 권위주의자가 되는 거 많이 봤잖아요.”

 학생에게 e메일을 보냈다. “평가는 엄격, 엄정, 엄밀해야 한다. 나는 그걸 지키려 노력했다. …네가 불성실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학생들의 성과(창의성·표현력)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근거를 알고 싶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다른 학생들의 과제물을 너에게 모두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수도 없지만 설령 그런다고 해도 너와 나의 가치관은 일치하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교수의 소신과 전문성을 존중해주기 바란다…받아들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학점 문제로 기분이 잠시 울적할 수는 있어도 사제관계가 흐트러지진 않으리라 믿는다.”

 소통 없는 소신은 고통을 낳는다. 종강파티에 나타난 학생은 아무 일 없다는 표정이다. e메일에 담은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그의 환한 얼굴(화난 얼굴이 아니다)을 보면서 행복이 성적과 맞물려 있진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음악이 나오자 A, B, C 관계없이 즐겁게 합창한다. 행복은 ‘성적’ 순이라기보다는 ‘성격’ 순이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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